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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과 리움이 예술로 이어온 시간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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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컬처 펀드와 리움미술관이 예술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배움의 방식.

위쪽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즉흥적으로 응답하는 ‘연주하기’ 세션.
아래쪽 즉흥음악가 필 민턴과 함께한 ‘합창하기’ 세션.

샤넬 컬처 펀드가 후원하는 리움미술관의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은 2023년부터 동시대의 중요한 질문을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통해 탐구해왔다. 그 세 번째 프로그램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이어지며 새로운 배움과 관계의 방식을 모색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세계적 인류학자 팀 잉골드(Tim Ingold)의 사유에서 출발했다.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와 환경을 구분하기보다 서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중동태(middle voice)’ 개념을 예술을 매개로 직접 경험하는 자리였다. 팀 잉골드의 기조 강연과 몸, 재료, 환경의 관계를 살펴보는 ‘만들기’ 워크숍으로 문을 열고, 이후 ‘춤추기’, ‘연주하기’, ‘합창하기’, ‘듣기’로 이어지는 다섯 가지 움직임을 통해 다소 낯선 개념을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경험으로 풀어냈다.
첫 번째 세션으로 진행된 ‘춤추기’에서는 안무가 안은미와 24명의 시니어 여성이 무용 프로그램 ‘둥실덩실’을 함께했다. 참여자들은 약 두 달 동안 저마다 몸에 쌓인 시간과 기억을 움직임으로 풀어내고 서로의 몸짓에 반응했다. 마지막 퍼포먼스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몸이 지닌 고유한 감각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호응하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나눴다.
첼리스트이자 작곡가 이옥경이 이끈 ‘연주하기’ 세션 역시 정해진 악보나 역할에서 벗어났다. 음악 프로그램 ‘소리 나누기’와 ‘즉흥음악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은 서로가 내는 소리를 듣고 즉흥적으로 응답하며 음악을 만들어갔다. 누군가의 소리가 또 다른 소리를 불러내는 과정에서 연주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서로 듣고 반응하며 만들어가는 경험으로 확장됐다.

위쪽 안무가 안은미와 함께한 ‘춤추기’ 세션.
아래쪽 ‘듣기’ 세션은 몸과 장소, 타인과 관계를 맺는 감각적 실천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어진 ‘합창하기’ 세션에서는 영국의 보컬리스트 겸 즉흥음악가 필 민턴(Phil Minton)의 ‘야생합창단(Feral Choir)’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3일 동안 참여자들은 일상적 호흡과 목소리가 아닌 다양한 소리를 매개로 서로의 존재와 차이에 반응하며 공동의 감각을 만들었다. 음악적 경험과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던 이 세션에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모여 예측할 수 없는 하나의 합창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듣기’ 세션은 홍콩의 아티스트 컬렉티브 사운드포켓(Soundpocket)과 함께한 리스닝 아카데미 ‘비는 하나의 축제’와 포럼 ‘듣기의 실천들’로 이어졌다. 참여자들은 비와 물, 몸과 장소의 관계를 걷기와 드로잉, 사운드 퍼포먼스 등으로 탐색하며 주변의 소리에 집중했다. 여기서 듣기는 소리를 인지하는 행위를 넘어 몸과 장소, 타인에게 감각을 열고 관계 맺는 방법으로 확장되었다. 이틀 동안 열린 포럼에서는 예술가와 연구자, 실천가들이 모여 듣기가 지닌 예술적·사회적·생태적 가능성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논의했다. 약 8개월간 이어진 다섯 개의 움직임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졌다. 우리는 어떻게 배우고, 또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가.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참여자들이 직접 움직이고 소리를 내며 서로에게 반응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답을 발견하도록 했다. 배움을 개인이 지식을 얻는 일에 한정하지 않고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로써 미술관 역시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새로운 감각과 지식, 관계가 생겨나는 공공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는 9월, 샤넬 컬처 펀드와 리움미술관은 ‘아이디어 뮤지엄, 내일 이후(Idea Museum, After Tomorrow)’를 통해 지난 3년의 시간을 다시 펼쳐 보인다. 그동안 이어온 실천과 대화, 그 과정에서 생겨난 질문을 한자리에 모아 두 기관의 파트너십이 만들어온 궤적을 돌아보는 자리다. ‘아이디어 뮤지엄’은 문화에 대한 지원이 하나의 전시나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생각과 실천이 지속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예술가와 연구자, 관람객이 만나 질문을 나누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긴 호흡의 장을 마련해온 샤넬 컬처 펀드의 행보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 에디터 조인정
  • 사진 리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