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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로 지은 거룩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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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초 스트로치의 건축과 피렌체, 그리고 마크 로스코의 영적 감각이 교차하는 〈로스코 인 피렌체〉는 색채로 구축한 공간적 경험을 다시 사유하게 한다.

Mark Rothko, No. 21(Untitled), 1947.
Fra Angelico, Mocking of Christ, the Virgin and Saint Dominic, 1438~1439.

피렌체 팔라초 스트로치 재단의 전시 〈로스코 인 피렌체〉는 모더니즘의 거장에게 바치는 헌사다. 마크 로스코의 예술을 작가의 예술 세계와 공명하는 새로운 공간에서 종합적으로 선보이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팔라초 스트로치의 건축과 피렌체는 그 자체가 이상적 배경이 되어, 로스코가 고전적 규율과 표현적 자유 사이의 긴장을 회화로 어떻게 전환했는지 조명한다. 또한 그가 색채를 통해 캔버스의 2차원적 표면을 초월하여 창출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로스코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손꼽히는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를 저술한 크리스토퍼 로스코, 고전적 공간을 연결하는 대규모 전시를 펼쳐온 큐레이터 엘레나 게우나(Elena Geuna)가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했다.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작가의 아들로 오랜 기간 곁에서 지켜보며 예술가로서 아버지를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를 위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런던 테이트 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워싱턴DC 국립미술관 등 주요 국제 미술관과 권위 있는 개인 컬렉션에서 70점 이상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연대순으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로스코의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조명한다. 표현주의, 초현실주의와 대화하는 듯한 구상 작품을 주로 그린 1930년대와 1940년대부터, 거대한 색채 영역으로 구성된, 그의 고전적 회화로 정의되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작품까지 망라했다.

Mark Rothko, No.3/No. 13, 1949.
위성 전시가 열리는 메디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입구.

특히 로스코의 초기 작품은 인체에 대한 상징적·심리적 접근과 르네상스적 공간 구성이 특징인데, 1936년 작 ‘실내(Interior)’의 구성이 산 로렌초 성당 새 성구 보관실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줄리아노 데 메디치 묘를 연상시키는 것이 그 예다. 이후 1940년대의 신초현실주의 회화에서는 더 유동적이고 변형적인 감성을 도입했으며, 이른바 ‘다형체(multiforms)’에 인물의 해체를 예고하듯 등장하는 부유하는 색채 영역은 완전한 추상으로 전환해가는 모습을 상징한다.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품 ’No.3 / No.13’(1949)이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 ‘무제(Untitled)’(1952~1953) 등 후기 대형 추상 캔버스에서 색채와 빛은 온전한 명상의 근원이다. 이후 작품의 색채는 더욱 절제되어 녹색과 청색에서 1960년대의 흙빛으로 변화한다. 전시는 마지막 섹션에서 ‘무제-회색 위에 검은색(Untitled-Black on Grey)’(1969~1970)과 후기 종이 작품들을 선보이는데, 여기서는 시에나 · 분홍 · 스카이 블루 톤이 내적 성찰과 엄격함의 통합을 보여준다. 팔라초 스트로치와 함께 로스코에게 각별했던 피렌체의 두 장소에서도 위성 전시가 열린다.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와 선별한 로스코의 작품들을 산 마르코 박물관과 메디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입구에서 함께 선보인다. 1950년 아내 멜과 함께 처음 피렌체를 찾은 로스코는 이곳들을 직접 둘러보며 미켈란젤로의 건축적 비전에 깊이 감동했고, 이는 1950년대 후반에 그린 그의 대표작 ‘시그램 벽화(Seagram Murals)’의 모티브가 된다.

마크 로스코 작가.
Mark Rothko, Untitled, 1969.

1966년 두 번째로 피렌체를 방문한 작가는 도시 공간과의 대화를 더욱 심화해간 것으로 보인다. 전시장 내부가 아닌, 작가가 직접 찾아 공명한 도시의 예술적 공간을 다채로운 작품과 함께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로스코의 섬세한 작품에서는 15세기 이탈리아 미술, 특히 안젤리코의 프레스코 기법에서 받은 영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500년의 세월을 넘어 두 예술가는 초월적 감각, 즉 멀리 있는 대상이나 존재의 내면 깊은 곳에서 친숙함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열망을 공유했다. 안젤리코가 신성한 형상들이 지상과 대화하는 감정적 공명을 통해 이를 달성했다면, 로스코는 색채 영역을 창조함으로써 추상화와 색채 이론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고 관람객을 다양한 감정적 깊이로 이끌었다. 3월 14일부터 8월 2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회고전을 넘어, 로스코가 평생에 걸쳐 갈구한 ‘침묵의 대화’를 재현하는 자리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를 꽃피운 피렌체의 성소에서 영성과 시적 언어로 관람객을 깊이 사로잡는 로스코의 작품 세계가 변화한 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발현된 이탈리아 전통 예술과의 긴밀한 연결점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미솔(아트 칼럼니스트)
  • 에디터 정희윤
  • 사진 팔라초 스트로치 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