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미식의 절정, 3월의 홍콩 | Nobl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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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미식의 절정, 3월의 홍콩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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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날씨와 함께 아트 신의 열기가 도시를 채우는 3월의 홍콩. 올해 40주년을 맞은 크리스티 홍콩의 봄 경매 시즌을 미리 만나본다.

크리스티 홍콩 전경.

홍콩은 언제 가도 설렘이 가득한 도시다. 크리스티 홍콩 스페셜리스트로 근무한 지 16년 차라 50회 넘게 홍콩을 다녀왔지만, 아직도 홍콩 출장은 나를 들뜨게 한다. 특히 3월의 홍콩은 모든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알맞은 날씨에, 볼거리와 먹거리 또한 풍성하다. 무엇보다 아트 러버라면 꼭 방문해야 하는 행사가 잇따라 열리는데, 그중 하나가 크리스티 홍콩의 봄 시즌 경매다. 크리스티 런던은 1766년에 설립되었으며, 홍콩 지점은 1986년에 오픈해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여느 해보다 더욱 풍성한 경매 프리뷰 전시를 비롯해 다양하고 성대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크리스티 홍콩 사무실이 위치한 더 헨더슨 빌딩.

크리스티 홍콩의 봄 경매 미리 보기

크리스티 홍콩의 봄 경매는 아트 바젤 홍콩과 함께 단순한 거래의 장을 넘어 예술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사회적 장면을 만들어낸다. 아트 페어는 신진 작가부터 거장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여 활기찬 에너지 속에서 미술계의 리듬과 흥을 체감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구조상 작품의 선별 기준은 자연스럽게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작품의 재판매가 이루어지는 크리스티 같은 경매사에서는 시장에서 검증된 이름을 다시 한번 엄선해 출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만큼 보다 정제된 밀도를 갖추게 되고, 대규모 페어에 비해 한결 차분한 환경에서 현재 시장 흐름을 읽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크리스티 프리뷰 전시를 찾는 관객 대다수는 미술과 건축, 미식과 쇼핑을 함께 즐기며 도시의 리듬을 경험하고자 하는 아트 러버로, 경매장을 하나의 문화적 플랫폼으로 받아들인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나 만날 법한 모네, 피카소, 르네 마그리트 등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의 주요 작품과 세실리 브라운, 조지 콘도 같은 동시대 거장의 대표작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전시장을 찾는 이가 많다. 특히 아트 바젤 홍콩과 일정이 맞물리는 봄 시즌에는 가을 경매보다 관객이 많은 편인데, 그렇다고 반드시 낙찰가 총액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경매에 참여하는 고객들은 차분한 프리뷰 공간을 천천히 거닐며 작품과 조용히 마주하고, 단기적 유행보다는 작가의 역사적 맥락과 시장 내 궤적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컬렉션 서사를 구상해나간다. 아시아와 서구 미술 시장을 동시에 이해하는 글로벌 컬렉터에게 홍콩은 아시아 미술의 현재와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밀도 높은 무대다.
올해 경매 프리뷰 전시는 3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진행된다.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 작품으로는 인상주의 거장으로 알려진 고흐·모네의 작업을 비롯해 쿠사마 야요이의 대형 노란 호박 그림, 이성자·이우환 등 한국 거장의 대표작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니콜라스 파티의 과일 정물화, 크리스틴 아이 추의 추상화 같은 주요 동시대 미술 작가의 주요 작품을 망라한다.
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성자 화백의 1962년 작품 ‘야생 할미꽃(Une Anemone Sauvage)’이다. 1951년 파리에 정착해 유화를 배운 지 불과 1년 만에 담당 교수가 조교를 청할 만큼 천부적 재능을 지닌 그녀의 추상화는 작가가 한국 모던 추상예술의 진정한 선구자임을 증명한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이성자가 평생에 걸쳐 다룬 다양한 주제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여성과 대지’ 연작 중 하나로, 특유의 서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구조적 완성도를 통해 파리라는 국제 무대에서 독자적 위치를 구축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대표 출품작은 쿠사마 야요이가 1993년에 완성한 50호 사이즈의 ‘호박(Pumpkin)’이다. 1993년은 작가의 예술 인생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된 해로,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서 선보인 대형 호박 설치를 통해 국제적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이로 인해 이 시기 제작된 호박 회화는 전성기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가에게 호박은 단순한 정물 그 이상의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자아의 투영이자 조용한 자화상이다. 검은 무한망 위에 떠오른 선명한 노란 호박과 리드미컬한 도트는 강박과 평온이 공존하는 쿠사마의 시각언어를 드러낸다.
호암미술관 전시를 통해 국내에도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니콜라스 파티의 과일 정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서양의 전통 정물화 장르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그의 작품에서 부드러운 파스텔 톤 과일은 조용히 화면 위에 놓여 있으나, 매끈하게 정제된 표면과 비현실적 색채는 현실과 환영 사이에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것이 관람자로 하여금 형태와 색, 리듬에 집중하게 하며, 파티 특유의 회화적 명상성을 강화한다. 3월 27일 진행되는 데이 세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 작가 크리스틴 아이 추의 2012년 작품 ‘하얀 땅을 보기 위해서(To See the White Land)’도 주목할 만한다. 날카롭고 유동적인 선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형성하는 긴장은 비움과 가능성의 공간을 암시하는 제목과 맞물려 조용한 사유의 깊이를 만든다. 2010년대 초 아이 추의 국제적 평가가 본격화되던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경매에서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크리스틴 아이 추, ‘…to See the White Land’.
니콜라스 파티, ‘Still Life’.
쿠사마 야요이, ‘호박’.
이성자, ‘야생 할미꽃’.
베르나르 뷔페, ‘Tete de Clown Fond Jaune’.

아트 러버를 위한 홍콩 트립 가이드

이 외에도 크리스티 방문객들은 홍콩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더 헨더슨(The Henderson) 빌딩의 감각적 건축을 경험할 수 있다. 크리스티는 2024년 9월에 완공된 이 건물로 이전하며 보다 풍부한 미적 경험을 제안하고 있다. 홍콩의 대표적 부동산 개발 기업 헨더슨 랜드(Henderson Land)가 자사 역량을 집약해 완성한 이 빌딩은 자하 하디드의 미래적 디자인을 완벽하게 구현한 마지막 유작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디테일이 정교하게 맞물린 공간에서 방문객들은 홍콩 건축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빌딩 안에는 몇 개의 레스토랑이 있는데, 특히 5층에 자리한 아키라 백(Akira Back)은 프리뷰 전시와 경매 참관을 마치고 출출한 허기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 셰프 아키라 백의 레스토랑으로, 일식과 한식을 창의적으로 결합한 퓨전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혁신적 메뉴는 전직 스노보드 선수였다가 요리사로 전향한 후 미쉐린 스타를 획득한 셰프의 역동적 삶의 궤적을 그대로 반영한다.
아트 러버의 3월 홍콩 여행 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아트 바젤 홍콩은 3월 25일부터 26일까지 VIP 오픈에 이어 27일부터 29일까지 퍼블릭 오픈한다. 전 세계 240여 개 주요 갤러리가 참여하며, 올해는 특히 아시아 큐레이터의 협업을 강화해 그 어느 때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예술적 목소리를 강조하는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아트 페어 기간에는 행사장 내부뿐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처럼 변모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시기 홍콩을 방문하는 아트 러버라면 미술관과 갤러리 투어도 중요할 터. 우선 크리스티 경매와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센트럴 지역에 위치한 주요 갤러리를 둘러보고 바다 건너 침사추이 지역으로 넘어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4대 메가 갤러리 중 지난해 10월 홍콩 지점을 폐쇄한 페이스를 제외하고 가고시안, 하우저 앤 워스, 데이비드 즈워너 등의 전시를 효율적인 동선으로 둘러볼 수 있다. 다른 아트 이벤트와 발맞춰 3월에는 수준 높은 전시를 많이 기획하는 만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갤러리 전시를 충분히 관람했다면 바다 건너에 위치한 미술관을 둘러볼 차례다. 침사추이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M+ 뮤지엄. 3월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추상화가 자오우키의 주요 판화 전시를 비롯해 ‘컴바인 페인팅’으로 알려진 로버트 라우션버그가 아시아에서 제작한 작품을 조명하는 특별전, 그리고 중국 주재 스위스 대사 재직 전후 장기간 중국에 머물며 방대한 중국 동시대 미술 컬렉션을 형성한 울리 지그의 소장품전 등을 만날 수 있다.
M+ 인근에는 2022년 개관한 홍콩 고궁 박물관이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중국 제국 미술의 정수와 문명 간 교류의 서사를 아우르는 전시가 펼쳐진다. 궁정 회화를 중심으로 한 기획전은 황실 미학의 깊이를 섬세하게 드러내며, 학술적 엄정함과 절제된 연출이 사유의 밀도를 더한다. 시각에 이어 미각까지 만족시킬 침사추이 지역의 미식 스폿으로는 궁중식 전통 딤섬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더 페닌슐라 호텔의 ‘스프링 문’과 샹그릴라 호텔의 ‘샹 팰러스’를 추천한다. 또 ‘원 딤섬’과 ‘렁 딤섬’에서는 보다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현대적 홍콩 딤섬을 즐길 수 있다. 이처럼 3월의 홍콩은 예술과 미식, 도시의 에너지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다.

미술품은 물론 가구, 고미술품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크리스티 홍콩 전시장 모습.
  • 에디터 김수진
  • 사진 크리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