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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위에 남겨진 회화의 호흡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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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대구에서 3월 12일부터 4월 30일까지 가 개최된다. 개인전을 앞둔 시점에서 드로잉과 페인팅,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유연하게 오가는 아티스트 에디 마르티네즈의 작품 세계를 미리 들여다봤다.

‘Freedom Bird’, Acrylic and oil on linen, 76.2×101.6cm, 2025.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에디 마르티네즈(Eddie Martinez)의 ‘WhiteOut’ 시리즈는 지우기와 덧칠하기라는 행위를 제거가 아닌 새로운 구축 방식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작업에서는 유화뿐 아니라 에나멜, 스프레이 페인트, 콜라주 등 다양한 재료가 각자 물성을 최대한 발휘되며 구상적 형태와 추상적 형태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동시에 선과 흔적을 전면에 드러내는 이미지는 층위와 누적, 수정과 삭제, 그리고 움직임의 변화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적 호흡을 만들어낸다.

오랜 시간 드로잉을 삶의 일부로 이어왔는데, 처음 드로잉을 마주한 순간과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나요? 특정한 그림이 기억나진 않지만 몰입을 통해 경험한, 시간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그런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드로잉은 늘 변하지 않는 존재였죠. 어디서든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그 안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었으니까요. 드로잉은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고, 이는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드로잉할 때 가장 집중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저는 재현보다는 리듬과 압력에 집중해요. 손을 계속 움직이며 너무 빨리 고치려 하기보다는 흐름에 맡기는 거죠. 드로잉은 취향이 개입되기 전에 본능이 먼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해요.

드로잉에서 출발한 회화 작업이 단순히 스케일이 확장된 형태인지, 아니면 그 안에 추가적 의도나 내적 구조가 개입하는지 궁금해요. 드로잉과 페인팅을 서로 다른 언어로 보시나요? 저는 그 둘을 같은 언어라고 생각해요. 다만 다른 볼륨으로 전해질 뿐이죠. 페인팅은 시간, 무게, 그리고 결과라는 요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가져와요. 스케일이 커지면 몸이 개입하고 움직임도 달라지며, 신체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작업 초기의 충동은 드로잉에서 시작되더라도 페인팅을 거치며 ‘저항’이 더해지고, 그 저항이 중요한 역할을 하죠.

에디 마르티네즈. © Jason Schmidt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릴 개인전 는 어떤 주제로 구성할 예정인가요? 이번 전시는 ‘WhiteOut’ 회화를 중심으로 전개합니다. 이 연작은 줄이고 지워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는 작업이에요. 이미 만들어둔 이미지의 일부를 없애거나 가리는 순간,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서 비롯되었죠. 흰색은 단순히 중립적인 덧칠이 아니라 화면을 편집하고, 압축하고, 재구성하는 능동적 요소입니다. 덮는 행위는 오히려 이미지를 다시 열어 새로운 구조와 리듬이 드러나게 해요. 결국 무엇이 남거나 다시 떠오르고, 어떤 것이 끝내 시야에 남는지 탐구하게 합니다.

관람객이 특별히 주목했으면 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작업의 표면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한 화면이 어떻게 여러 시간의 순간을 동시에 담아내는지 느꼈으면 해요. 처음에는 절제되고 조용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정말 많은 것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각 작업은 하나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정착하는 게 아니라 묻힌 것과 여전히 밀고 올라오는 것 사이의 긴장을 다룹니다. 자세히 보면 그 과정 자체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의 작업은 종종 미완성처럼 보이는 완성의 상태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작품에서 이러한 ‘미완성된 완성’의 지점은 언제 결정되나요? 대부분 그림이 더 이상의 변화를 거부할 때예요. 한 번 더 손을 대면 설명이 과해지거나 긴장이 평평해질 것 같은 순간이 오거든요. 저는 그림이 여전히 열려 있는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더 이상 제 개입이 필요 없어질 즈음 멈춥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준비 중인 향후 계획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지금은 보스턴에서 진행 중인 대형 커미션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리고 올여름 빈의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드로잉과 함께 선보이는 전시가 예정되어 있는데, 오랫동안 존경해온 거장의 작품을 만나는 자리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한국 관람객과의 만남도 기대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