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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은 자연을 배경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다시 호출한다. 지금 서울에서 열리는 두 전시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은경, 그글피, 182×230cm. 2022~2023. 사진 이정우. 사진 제공 작가.

사라지고 생성되며 순환하는 환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5월 3일까지 열리는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미술의 가치 기준을 되묻는다. 오랫동안 예술 작품은 ‘영원히 남는 것’을 전제로 평가되어왔고, 미술관은 그것을 보존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이 전시는 변화하고 삭으며 결국 사라지는 과정을 스스로 드러내는 작품에 주목한다. 작품은 더 이상 완성된 형태로 고정되지 않고, 시간과 환경 속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한다. 특히 아사드 라자(Asad Raza)의 참여형 작품 ‘흡수’는 이러한 관점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게 한다. 서울에서 나온 폐기물과 현지 재료를 섞어 새로운 토양 ‘네오소일’을 만들고, 이를 시민과 나누는 과정이 작품의 핵심이다. 흙은 여기서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도시의 기억과 공동체의 경험이 축적된 매개가 된다. 작품은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대신 만들어지고 나뉘어 다시 다른 생명의 토대가 된다. 이는 예술이 자연의 순환에 참여하는 하나의 과정이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작품은 예술이 더 이상 생산과 소유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돌보고 나누는 관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는 분해와 소멸 또한 생성의 일부로 바라본다. 썩어가는 과일에서 발생한 에너지로 빛과 소리를 만들어내고, 풀과 흙으로 만든 구조물이 계절의 흐름에 따라 형태를 잃었다가 다시 꽃을 피우길 반복하는 장면을 통해 자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곰팡이, 곤충, 미생물, 식물 같은 다양한 존재가 함께 만들어가는 풍경 속에서 예술은 더 이상 인간만의 창작물이 아니다.

에드가 칼렐,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2021. 사진 스튜어트 휘프스. 사진 제공 작가 및 리버풀 비엔날레.
안나 리들러, 꽃을 피우는 하루, 2021~현재.

새롭게 관찰하는 자연의 시간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3월 22일까지 이어지는 ‘예술가의 연구’ 시리즈 〈미완의 식물지—이소요〉, 〈꽃 시계—안나 리들러〉는 자연에 대한 또 다른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분해와 순환의 장면보다 식물과 시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태도다. 변화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오래 기다려야 비로소 보이는 미세한 움직임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소요의 작업은 한 권의 식물학 도서를 출발점으로, 그 안에 기록된 식물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이동하고 확장되는지 추적한다. 전시장에는 텍스트 드로잉과 식물표본, 연구 자료와 도표가 펼쳐지고 학술 기록과 예술적 해석이 뒤섞인다. 중요한 것은 이 지식이 완성된 체계가 아니라 계속 수정되고 덧붙여지는 ‘미완의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식물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하듯, 인간의 지식 또한 변화 속에서 갱신된다. 한편 안나 리들러의 ‘꽃 시계’ 연작은 기술을 통해 자연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작가는 하루 중 특정 시간에 피고 지는 꽃의 생리적 리듬에 주목하고, 이를 인공지능 모델을 통해 시각화한다. 서울의 위도와 계절 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화면 속 꽃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적 시간 체계와 다른 리듬으로 움직인다. 여기에 더한 사운드는 인간 중심의 시간 감각을 잠시 멈추고, 다른 존재의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기술은 여기서 자연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다시 감각하게 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두 전시는 오늘의 예술이 자연을 다루는 서로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작품이 분해되고 순환하며 자연의 일부가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식물의 시간과 지식을 기록하며 인간 중심의 시선을 잠시 멈추게 한다.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예술이 다시 살아 있는 존재와의 관계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향한다. 여기서 자연은 더 이상 풍경이나 소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고,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지 묻는 출발점이 된다. 흙을 나누고, 식물을 기록하고, 비인간 존재의 시간을 감각하는 작업은 예술이 생산과 소유의 논리를 넘어 공존과 관계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의 두 미술관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이 장면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시대 예술이 공유하는 변화의 단면에 가깝다. 예술이 자연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은 자연이 예술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거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아사드 라자, 흡수, 2020. 작가 및 베를리너 페스트슈필레/이머전 제공. 사진 아이케 발켄호르스트.
〈미완의 식물지—이소요〉전 전경. 사진 조준용.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