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맥그리거가 만드는 안무의 미래
인간의 몸은 어디까지 기능하며 표현될 수 있을까.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이루는 첨단 기술은 그 가능성을 어떻게 재편할 수 있을까. 웨인 맥그리거의 작업은 언제나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위쪽 Wayne McGregor*s Deepstaria, Company Wayne McGregor (Jasiah Marshall), Laban Theatre, London (2024), Ravi Deepres
아래쪽 Wayne McGregor’s Deepstaria, Company Wayne McGregor (Jasiah Marshall and Jordan James Bridge), Laban Theatre, London (2024), © Ravi Deepres
영국 로열발레단 상주 안무가이자 동시대 무용의 지형을 재편해온 예술가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 그의 안무에서 기술은 몸을 대체하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신체 감각을 드러내고, 움직임이 생성되는 방식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매개에 가깝다. 무용수의 몸은 하나의 형식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 물질과 비물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끊임없이 갱신되는 감각의 장으로 작동한다. 그의 작업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몸’에 대한 탐구가 무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신경과학자, 엔지니어, 건축가, 음악가 등과 협업해 움직임이 생성되는 방식을 다층적으로 해부하고, 이를 다시 안무로 환원한다. 특히 1990년대부터 VR, 알고리즘,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기술을 보조적 장치가 아닌 창작의 동반자로 다뤄왔다. AI를 ‘열한 번째 무용수’로 호명하는 태도 역시 인간의 신체를 고정된 조건이 아닌 활용 가능한 지능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맞닿아 있다.
2026년 3월, 그는 GS아트센터 ‘예술가들’ 시리즈를 통해 한국 관객과 다시 만났다. 9년 만에 내한해 선보인 는 심해와 우주라는 2개의 ‘심연’을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 작품이다. 밴타블랙과 AI 오디오 시스템 등 최첨단 기술을 통해 무용수의 감각을 극단까지 밀어붙였고, 매 공연 변주되는 사운드에 반응해 생성된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한 긴장과 밀도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몸과 움직임, 그리고 음악이 맞닿는 가장 원초적인 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번 내한은 하나의 공연으로 끝나지 않는다. 를 기점으로 5월 초 무대에 오를 , AI 안무 툴 AISOMA 시연, 인터랙티브 설치를 포함한 전시와 워크숍까지 이어지며 그의 작업 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완성된 결과를 제시하기보다 오랜 시간 축적해온 질문과 실험 과정을 공유하는 방식에 가깝다. 인간의 신체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그리고 기술은 그 가능성을 어떻게 다시 조직하는가. 그의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3월 한국에서 초연한 〈Deepstaria〉는 심해와 우주라는 서로 다른 두 ‘심연’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처럼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두 공간을 하나의 무대로 가져올 때, 안무적으로 가장 먼저 설정한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이 작업은 ‘스케일 붕괴(scale collapse)’라는 개념에서 출발했습니다. 심해와 우주처럼 인간의 감각과 기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공간을 재현하기보다 그 감각을 신체로 끌어들이는 데 초점을 맞췄죠. 방향 감각이 무너지고, 자신의 위치조차 다시 인식해야 하는 상태, 그 낯선 조건이 몸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출발점으로 삼았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거대한 세계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케일을 신체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 경험하도록 만드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Deepstaria〉는 거대한 스케일 속 인간의 존재를 탐구합니다. 제목의 모티브가 된 해파리는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스스로를 재구성하는데, 이러한 비가시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움직임으로 번역할 때 설정한 원리가 있었나요? 해파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환경에 반응하는 유동적 상태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 ‘형태’가 아닌 ‘작동 방식’에 주목했고요. 그래서 안무 역시 특정 이미지를 재현하기보다 무용수들이 서로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흐름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는 일종의 ‘분산된 지능(distributed intelligence)’처럼 작동하는 구조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이죠.

작품은 거의 완전한 어둠 속에서 전개됩니다. 이러한 조건은 움직임을 판단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고, 리허설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이번 작업에서는 특히 시각이라는 감각을 의도적으로 제한했습니다. 무용은 기본적으로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장르인데, 그 비중을 줄일 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실험하고 싶었죠. 리허설에서도 밝은 환경으로 시작해 점차 어둠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무용수들이 시각이 아닌 신체 감각과 청각에 기반해 움직임을 만들어가도록 의도했습니다. 그 결과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보여주기 위한 형태’에서 벗어나 몸속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감각의 형태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Deepstaria〉는 AI와 사운드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통해 춤과 음악의 본질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이 작품에서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공연의 구조 자체를 형성하는 요소입니다. 사운드는 매 공연에서 실시간으로 생성되며, 무용수들은 그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로 인해 동일한 장면이라도 매번 다른 움직임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방식이 전자음악과 춤의 간극을 좁히고, 보다 살아 있는 라이브 퍼포먼스 상태에 가깝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안무는 더 이상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계속 생성되는 과정으로 존재하는 거죠.
무용수들은 매 공연 변화하는 AI 생성 사운드에 반응합니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을 도입한 이유와 그것이 안무가로서 역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즉흥적 구조에서는 무용수의 선택과 반응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매 순간 듣고 판단하며 움직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안무가의 역할도 달라집니다. 과거처럼 모든 움직임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 생성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구성하는 쪽에 가까워졌죠. 저는 결과를 통제하기보다 그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무가는 구조를 촉발하는 ‘instigator’에 가까운 위치로 이동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 서울 공연에서는 〈Deepstaria〉에 이어 초기 대표작 〈Infra〉도 소개됩니다. 두 작품을 같은 맥락에 둘 때, 관객이 ‘비교해서 보기를 바라는 지점’이 있나요? 가 인간의 감각 바깥에 있는 스케일을 다룬다면, 는 도시라는 환경에서 인간 상태를 보다 밀접하게 다룹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교차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각자 고립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저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인간의 몸이 친밀한 감정과 광활한 감각 사이를 오가며, 서로 다른 조건을 ‘코드 스위칭’하듯 전환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약 20년 전에 초연한 〈Infra〉는 도시의 표면 아래 감춰진 감정과 고독을 다룬 작품입니다. 여전히 전 세계 관객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작품이 오래 공연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안에서 다루는 감정이 특정 시대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립과 연결의 이중성은 지금도 현재를 살아가는 대다수에게 유효한 감각입니다. 또 이 작품은 관객이 직관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냅니다. 무용수의 몸짓과 함께 흐르는 막스 리히터의 음악 역시 감정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며, 작품을 ‘느끼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주고요.
그간 작업에서 과학자, 엔지니어,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했습니다. 이러한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이며, 서로 다른 분야가 어떻게 하나의 안무 언어로 통합되나요? 협업은 위계적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기술이 예술을 보조하거나, 반대로 예술이 기술을 장식하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 사고방식이 유지된 채 서로 스며드는 상태가 중요합니다. 저는 협업 초기부터 일련의 ‘스며드는 상태(permeability)’를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각 분야의 언어가 단순히 번역되는 것이 아닌, 안무의 구조 안으로 들어와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고요.
AI를 ‘열한 번째 무용수’라고 표현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히는 듯합니다. 창작 과정에서 AI는 어떻게 의사 결정에 참여하며, 인간 무용수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나요?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이라면 쉽게 선택하지 않을 움직임을 제안하며 창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무용수들은 그 제안에 나름대로 반응하며 스스로 움직임을 다시 구성하죠. 다만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human in the loop’, 즉 인간의 판단과 선택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AI는 결정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탐색하는 파트너에 가깝습니다. 저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습니다.
사실 AI 같은 시대적 첨단 기술을 활용한 건 이번 작품이 처음은 아닙니다. 오히려 1990년대부터 VR, AI, 알고리즘을 안무에 도입한 선구자에 가까운 인물이 바로 웨인 맥그리거죠. 기술을 안무 언어 자체를 변화시키는 요소로 통합하는 접근 방식은 무엇인가요? 기술은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덧붙이는 요소가 아니라 개념을 구성하는 초기 단계부터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저는 기술이 창작 주체성(authorship), 시간성(temporality), 그리고 신체성(embodiment)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주목합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안무 언어 자체를 재구성하는 요소로 작동합니다.
‘신체 지능(physical intelligence)’ 개념을 오랫동안 탐구해왔습니다. 기술이 고도화된 시대에 인간의 몸이 지니는 고유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인간의 몸이 지닌 특성은 더욱 선명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효율성과 정확성을 추구하지만 인간의 몸은 모호함과 모순, 그리고 비효율성을 포함한 상태로 존재하죠. 저는 이러한 불완전함 자체가 하나의 지능이라고 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예측할 수 없는 표현이 발생하고, 인간의 움직임은 더욱 풍부해집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안무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오늘날 안무가는 단순히 동작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움직임이 생성되는 조건과 구조를 설계하는 ‘시스템 디자이너’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술이 개입하는 환경에서는 무엇이 가능한지를 넘어 왜 그것이 필요한지를 함께 질문하는 태도가 중요하죠.
당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유지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AI가 인간의 판단과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신체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 작업을 통해 탐색하고 있죠.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이 와 를 통해 어떤 경험을 하길 바라시나요? 낯선 감각을 마주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몸을 새롭게 인식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인간의 몸은 여전히 가장 원초적인 기술이며, 제 작업의 출발점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