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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가 독서를 향유하는 법

CULTURE

패션 하우스가 독서를 통해 지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영역을 확장하는 방식.

루이 비통 시티 가이드 아카이브.
루이 비통과 유니세프와의 파트너십 1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집.

패션 하우스는 오래전부터 의류만이 아닌 가구와 테이블웨어, 호텔과 레스토랑, 카페와 전시 공간에 이르기까지 브랜드의 미학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제안해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관심이 ‘책’과 ‘읽는 문화’로 향하고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와 콘텐츠 시대에도 책은 여전히 시간을 들여 읽고, 머물며, 사유하게 만드는 매체다. 패션 하우스들이 책과 독서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을 입을 것인가를 넘어 어디에서 무엇을 읽고, 어떤 생각을 나눌 것인가까지 브랜드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끌어안은 것이다. 이는 단순히 책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독서를 통해 브랜드의 취향과 가치관을 공유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서를 향한 관심은 가장 먼저 공간의 변화를 이끌었다. 도서관이 책을 보관하거나 열람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의 문화적 취향을 경험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5년 말에 공개한 샤넬의 ‘에스파스 가브리엘 샤넬’은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 사례다. 상하이 파워 스테이션 오브 아트와의 장기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조성한 이 공간은 현대미술 전문 공공 도서관을 중심으로 전시 공간과 극장, 디자인 센터, 황푸강을 조망하는 테라스를 갖춘 복합 문화 플랫폼이다. 1700m² 규모의 공간에는 예술과 디자인, 건축, 문화,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장서와 시청각 자료를 갖췄으며, 연구와 전시, 강연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열린 문화 거점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올해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미우미우 문학 클럽.
에스파스 가브리엘 샤넬 내부.
질 샌더의 <레퍼런스 라이브러리> 전시 프로젝트.
도쿄 하라주쿠에서 열린 아크네 스튜디오의
핑크 라이브러리 팝업.

무엇을 읽을 것인가를 제안하는 흐름도 눈에 띈다. 질 샌더는 2026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출판사 아파르타멘토와 함께 〈레퍼런스 라이브러리〉 전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디자이너와 건축가, 예술가들이 실제 작업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책을 큐레이션했다.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의 출발점을 공유한 프로젝트다. 미우미우는 문학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경험 자체에 주목한다. 네 번째를 맞은 ‘미우미우 문학 클럽’은 미우치아 프라다의 기획 아래 아니 에르노의 <소녀의 이야기>와 아마 아타 아이두의 <변화들: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욕망과 동의, 자기 결정권을 둘러싼 담론을 이어갔다. 특히 올해는 철학자 로지 브라이도티가 선정한 도서로 꾸민 작은 도서관 형태의 큐레이티드 라이브러리를 처음 선보였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고 머물 수 있는 리딩 룸도 마련했다. 문학을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까지 브랜드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끌어들인 셈이다.
책은 출판을 통해 더 오래 생명력을 이어간다. 루이 비통은 오랫동안 〈시티 가이드〉, 〈패션 아이〉, 〈트래블 북〉 시리즈 등을 통해 도시와 여행, 사진을 기록하며 메종이 바라보는 세계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지난달 〈패션 아이 이비자〉와 〈패션 아이 부쿠레슈티〉를 동시 출간한 데 이어, 아를 국제 사진 페스티벌에 맞춰 〈시티 가이드 아를〉을 선보이며 출판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유니세프와의 파트너십 10주년을 기념한 사진집 〈REBONDS〉 또한 복간하며 메종의 출판 아카이브를 한층 공고히 했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단행본 형태의 문화 매거진 <아크네 페이퍼〉를 발간하며 패션과 예술, 문학, 건축을 아우르는 편집 철학을 구축해왔다. 올해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아크네 페이퍼> 21호 <오토포트레이트>를 발간하는 동시에 도쿄 하라주쿠에 팝업 형태의 ‘핑크 라이브러리’를 열었다. <아크네 페이퍼> 전권과 브랜드가 출간·큐레이션한 서적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리딩 룸을 마련해 출판을 다시 읽는 경험으로 연결하고, 책이 지닌 지속성과 읽는 즐거움을 브랜드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책을 매개로 브랜드의 지적 취향과 문화적 태도를 공유하고, 소비를 넘어 사유와 대화가 이어지는 접점을 만드는 것. 오늘날 독서는 패션 하우스가 구축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천천히, 그리고 가장 오래 경험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