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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크리스틴 선의 마음이 서울에 상륙했다

ARTNOW

예술가, 농인, 이민자, 한국계 미국인, 두 아이의 엄마. 9월 갤러리현대 개인전 를 앞둔 김 크리스틴 선이 그간 깊이 들여다본 마음들에 대하여.

김 크리스틴 선 미국에서 태어나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다. 드로잉, 벽화, 퍼포먼스, 영상, 설치를 넘나들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언어와 소통의 질서를 질문한다. 미국 수어의 구조와 음악 기보법에서 착안한 그래픽 노테이션을 바탕으로 소리와 움직임을 독창적 조형 언어로 발전시켰으며, 농인 커뮤니티의 경험을 언어와 번역, 접근성과 공존에 관한 보편적 질문으로 확장해왔다. 2025년 <아트리뷰> 선정 ‘파워 100’ 중 세계 현대미술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34위에 올랐고, 같은 해에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을 워커 아트 센터로 순회해 선보였다. 이 외에도 2016년 독일 베를린 비엔날레, 2023년 광주비엔날레, 2025년 일본 모리 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언어와 소통, 접근성을 둘러싼 동시대 담론을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I’m coming from a place of fear(제 작업의 출발점은 두려움이에요).” 김 크리스틴 선은 자기의 예술의 동력이 ‘불안’과 ‘긴장’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작가다. 그 두려움은 불안정한 경제 상황이나 개인의 일시적 감정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농인으로서 청인 중심 사회에서 마주하는 공포는 공기처럼 존재했다. 정보의 차단과 발언권의 박탈, 숱한 오역과 그로 인한 소통의 오류. 불합리와 긴장의 한복판에서 크리스틴이 택한 것은 소리와 언어에 대한 주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그렇게 미국 수어(American Sign Language, ASL)의 리듬과 미묘한 뉘앙스를 악상기호로 옮기고, 농인으로서 느낀 분노와 각성을 기호학적 드로잉에 담아냈다. 그의 초기작 ‘All Night’는 ‘밤새’를 뜻하는 미국 수어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한 팔을 가슴 앞에 수평으로 뻗어 지평선을 만들고 다른 팔을 해가 저물듯 천천히 내리는 몸짓을 형상화한 그 드로잉은, 시간이 단지 세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일임을 일깨운다. “두 번째 밤이 닫히기 전에 너는 너의 불안이다. 두 번째 밤이 닫히기 전에 너는 너의 환영이다. 두 번째 밤이 닫히기 전에 너는 너의 겹을 벗어야 한다.” 작품을 보다 문득 이제니 시인의 시구를 떠올렸다. 누군가 지나온 무수한 낮과 밤을 헤아려본다. 내재화된 불안을 다독이며 숱한 탈피 끝에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온전히 획득한 사람을. 크리스틴을 통해 불안을 딛고 다시 태어나는 법을 배운다.

블랙 드레스 MIU MIU, 주얼리 모두 아티스트 소장품.

9월 갤러리현대 개인전 를 앞두고 있습니다. 사실 작가님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보다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에 훨씬 집중해온 듯하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한국과의 관계도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작가님의 일상과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출신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제 작업 전반을 이끌어온 중요한 동력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농인으로서 정체성’에 깊이 몰두해왔어요. 그래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비롯한 다른 측면은 비교적 최근까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죠.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의 정체성이 결국 부모의 양육 방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자주 생각합니다. 제 부모님이 제게 보여주신 것들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해줄지 의식하고 있고, 아이들이 한국적 뿌리를 자신을 이루는 중요한 일부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물론 그 과정에서 비어 있는 연결 고리가 보일 수 있지만 서울을 더 자주 찾는 것이 그 간극을 메우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저는 미국을 떠나 베를린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이민자 부모 밑에서 자란 경험이 저 자신을 얼마나 깊이 형성했는지 아직 다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실은 늘 제 마음 한편 깊숙이 자리해서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나라를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지고 있어요. 이번 갤러리현대 전시에서는 새로운 연작 셰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 페인팅을 처음 선보입니다. 전시에 대한 제 불안과 긴장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은 작품으로, 말 그대로 캔버스를 변형한 회화예요. 회화와 조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이 작업들을 통해 제 마음 상태는 어루만질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 형태를 띠게 됐습니다. 이 새로운 시도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보인다는 건 무척 뜻깊은 일입니다.

MMCA×LG OLED 시리즈 2026: 김 크리스틴 선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 전경. 고전 만화의 모션 라인에서 착안한 그래픽과 초대형 곡면 디스플레이를 활용해 언어와 사회적 관계의 속도, 방향, 충돌을 표현했다. 초대형 곡면 디스플레이에 나오는 애니메이션과 벽면·바닥의 벽화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갤러리현대 개인전 에서 선보이는 ‘Mind Here with Staff’(2025). 전시 제목의 ‘달’은 미국 수어에서 ‘마음’과 같은 움직임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출발했으며, 작가의 딸 이름이기도 하다.

드로잉,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리에 대해 탐구해왔습니다. 지금의 김 크리스틴 선에게 ‘소리’란 무엇인가요? 세상은 여전히 청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 안에서 소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소리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규칙과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도록 배웠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리는 저를 억압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정의한 방식이 아닌 나 자신의 방식으로 소리를 인식하는 일이었죠. 요즘 저는 수어 통역사들과 제 아이들을 통해 소리를 더욱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제 목소리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통역사와는 깊은 신뢰 관계가 필요하죠. 최근에는 두 살 된 아이가 수어로 “아기가 울고 있어”라고 알려준 적이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우는 아기가 있었어요. 요즘은 이렇게 제 주변 사람들을 통해 소리에 대한 단서를 얻는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소리를 작업의 주제로 삼은 건 언제부터인가요? 2008년 베를린에서 짧은 레지던시에 참여했는데, 당시 제가 살던 미국과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고가 확장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소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농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어요. 그래서 소리를 다루는 작업이 저를 ‘덜 농인처럼’ 만들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어요. 이후 미술대학원(MFA 과정)을 한 번 더 다니면서 그리고 꽤 긴 시간에 걸쳐 소리를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금씩 분명해졌습니다. 문장을 알기 전 먼저 단어를 익히듯, 우선 소리를 다루기 위한 저만의 어휘를 만들었어요. 지금은 그 어휘들을 바탕으로 문법을 만들어가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소리를 다루는 작업을 할 때 더 이상 청인들에게 예의를 차리거나 눈치 보지 않는 법을 배웠다는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들은 말할 권한이 없으니까요. ‘소리의 소유권’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죠.

스커트 PUSHBUTTON, 화이트 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과거 인터뷰에서 “영어는 선형적(linear)이지만, 미국 수어는 화음(chord) 같다”고 말한 적이 있죠. 다차원적이고 공간적이라는 점에서 수어와 음악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드 칼리지 재학 시절 음악과 기보법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소리와 수어를 악보 위에 시각화하기 시작했어요. 그 시작은 어땠나요? 작업 초기에는 제가 내리는 많은 예술적 선택이 얼마나 청인 중심적인지 인지하지 못했어요. 무의식적으로 청인 관람객이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듣기 좋거나 심미적인 방식으로 소리를 다뤘죠. 동시에 제 작업의 어떤 부분이 자칫 농인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저 자신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드로잉을 하거나 악보를 구성할 때 참고할 만한 선례가 거의 없었어요. 그나마 미국 수어를 글자로 옮겨 적는 글로싱(glossing), 즉 수어를 종이 위에 문자로 표기하는 방식 정도가 있었죠. 이 역시 하나로 확립된 체계가 아니라 여러 방식이 있었고요. 이 점이 글로싱과 기보법을 결합하는 계기가 됐어요. 한번 그 길에 들어선 후로는 망설임 없이 이 방식을 계속 밀고 나갔습니다.

작가님의 드로잉에는 번짐, 얼룩, 취소선 등이 존재합니다. 이렇듯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농인의 역사는 너무나 자주 지워지고 주변부로 밀려나며 부정확하게 기록돼왔어요. 게다가 그 기록 대부분은 농인이 아닌 이들이 남긴 것이죠. 흔적을 남기는 행위에는 정치적 의미가 있어요. 저는 음악의 셈여림이나 음표, 오선을 너무 정교하게 그리지 않는 편이에요. 좀 더 느슨하게 남겨두는 것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여기에 여러 움직임을 나타내는 선을 더해 이야기를 전하고 생각을 나눕니다. 무엇보다 선을 지나치게 깔끔하게 그리면 제가 어떻게 보일지 너무 의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로 변질돼버립니다.

‘Mass Land’(2026). 자신의 마음과 가족, 정체성을 들여다보고 이를 시각화한 셰이프트 캔버스 페인팅 작품으로, 이번 개인전에서 처음 공개하는 신작이다.

작품은 주로 흑백의 미니멀한 톤을 유지해요. 다양한 색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느끼는 불안이 한몫한 것 같아요. 저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집착하는 편이었어요. 제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도록 분명한 정보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죠. 하지만 최근엔 조금씩 색을 써보고 있어요! 9월 갤러리현대 개인전을 위해 만든 새로운 회화 연작에는 2차색의 흔적이 은은하게 남아 있습니다.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Mudam Luxembourg)에서 열리는 유리 파빌리온 전시를 위해 짙은 푸른색의 대형 셰이프트 캔버스 페인팅 작업도 준비 중이에요. 이제는 좀 더 모호해져도 괜찮다고 느끼며 색을 탐구하는 특권을 조금씩 즐기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언어와 소통의 문제를 뛰어넘어 새로운 감각을 선사합니다. 특히 ‘The Sound of Temperature Rising’은 개인의 경험부터 당시 과열된 정치적 분위기, 기후 위기까지 아우르죠. 그 드로잉을 만들 당시 첫아이를 임신한 때였어요. 몸속에서 혈액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돌다 보니 체온이 높아지고 밤엔 잠을 제대로 이루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이 신체적이면서도 감정적인 경험을 음표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보통 음표와 연결해 생각하지 않는 경험을 음표로 옮겨보는 걸 좋아합니다. 결국 이 또한 규칙을 깨는 일과 같기 때문일까요?

2018년 ‘Too Much Future’라는 작은 드로잉을 휘트니 미술관의 대형 옥외 간판으로 만든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작품 세계를 대규모 공공 작업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MMCA×LG OLED 시리즈의 일환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선보인 전시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 역시 그 연장선에 있죠. 휘트니 옥외 간판 작업은 미술관 큐레이터 제니 골드스타인이 처음 제안했는데, 그녀는 정말 최고의 큐레이터예요! 당시 제 상황은 첫아이가 태어난 직후였어요. 큐레이터의 제안으로 그해 초 그려둔 드로잉들을 들여다보는데 솔직히 크게 확대해도 될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구현된 모습을 보고 나니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 시도는 제게 정말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벽화 작업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제 벽화를 의뢰받으면 저는 가능한 한 많은 공간을 욕심내요. “천장도 가능할까요? 바닥은요?”라고 물으면서요. 사람들을 만날 때 바로 눈앞으로 다가가기를 좋아하는데, 대형 작업은 그런 제 성향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결과 같기도 합니다.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은 “Have Many Dumb Fights Against Rock”이라는 문장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에요. 수어로 표현하면 굉장히 역동적인 몸짓을 수반하죠. 더불어 최근 제가 ‘돌처럼 굳은 마음’을 다룬 시리즈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논쟁을 벌이는데 상대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상황, 너무 무겁고 단단해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말을 건넬 때의 무력감이 담겨 있습니다.

비장애인 중심의 미술계에서 농인으로서 겪는 분노의 정도를 수학적 도표처럼 표현한 ‘Degrees of My Deaf Rage in the Art World’(2018). Photo by Yang Hao for White Space Beijing. 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Hyundai.
첫 아이를 임신하며 느낀 신체의 열감에서 출발해 당시의 정치적 긴장과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온도 상승을 ‘온도가 올라가는 소리’로 시각화한 ‘The Sound of Temperature Rising’(2019). Photo by Stefan Korte for PS120. 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Hyundai.

작년에 프랑수아 게발리 갤러리 개인전 <American Sigh Language>에서 선보인 사운드 설치 ‘Community Sigh’도 흥미로웠어요. 전 세계 농인 66명의 한숨 소리를 기록하고, 그것을 커스텀 LP로도 제작했죠. 베를린에 사는 한국인 친구가 ‘수어로 배우는 김치 워크숍(Kimchi Workshop in Sign Language)’이라는 포스터를 만들고 있었는데, 실수로 ‘sign’의 n을 h로 잘못 써서 ‘sigh’가 된 거예요. 그 오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허락을 받고 그 표현을 썼어요. 해당 작품의 참여자 대부분은 미국 농인이지만 유럽과 아시아 등 다른 지역의 농인들도 함께했어요. 제가 한숨을 하나의 ‘노동’으로서 생각하는 개념을 설명하자 모두 즉시 제 말을 이해하고는 “물론이죠. 할게요!”라고 답했죠. 재밌는 건 참여자 대부분이 음성 메모 앱을 처음 사용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제가 하나하나 사용법을 알려주며 제대로 녹음하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자신의 한숨 소리 파일을 기꺼이 맡겨준 것이 정말 고맙고 영광스럽게 느껴져요.

과거엔 청인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까 불안해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많은 청인이 작가님과 더 잘 소통하려고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소통에 관해 새롭게 품고 있는 생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제 사람들이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다는 사실이 꽤 마음에 들어요. 저는 아주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제 경험을 작업에 담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려고 합니다. 때로는 불안감 때문에 과한 설명을 덧붙이거나 너무 많은 말을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한 걸음 물러나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전 ‘Cross My Mind’라는 드로잉을 만들었는데, 작업을 마친 후 ‘My’를 지우자 훨씬 강하게 와 닿는 걸 느꼈습니다. 어쩌면 이제 불안은 제게 샤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애쓰지 말고 좀 편하게 해”라고 계속 말을 걸어주면서 말이죠.

  • 에디터 윤정훈
  • 사진 양중산(인물), 국립현대미술관, 갤러리현대
  • 헤어 & 메이크업 김민지
  • 스타일링 조해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