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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카를로 라티의 미래 도시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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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기후에 건축은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서울이라는 도시가 미래에 갖춰야 할 조건을 새롭게 제시하는 주거 타워 ‘Climate Adaptive Tower’를 통해 건축가 카를로 라티가 말하는 미래 도시의 새로운 문법을 살펴본다.

카를로 라티 아소차티와 GS E&C가 협업한 서울의 기후 적응형 주거 타워 ‘Climate Adaptive Tower’.
© Carlo Ratti Associati / GS E&C
카를로 라티.
Photo by Andrea Avezzu,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건축은 언제나 도시의 미래를 먼저 상상해왔다. 그러나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된 오늘날,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높이 세울 것인가가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과 자연을 함께 품을 수 있는가다. 폭우와 폭염, 이상기후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닌 시대에 건축은 단순히 인간을 보호하는 구조물을 넘어 도시가 변화하는 환경과 공존하고 적응하도록 돕는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엔지니어, 도시 연구가인 카를로 라티(Carlo Ratti)는 이러한 시대적 전환을 가장 적극적으로 탐구해온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도시와 디지털 기술의 관계를 다루는 MIT 센서블 시티 랩(MIT Senseable City Lab)을 설립하고 이끌어온 그는 데이터와 기술이 도시 환경과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2025년 제19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큐레이터로서 ‘완화(mitigation)’에서 ‘적응(adaptation)’으로의 전환을 주요 화두로 제시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이는 데 머무르는 것을 넘어 이미 변화한 환경 속에서 도시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최근 카를로 라티 아소차티(Carlo Ratti Associati)가 GS건설과 협업해 공개한 ‘Climate Adaptive Tower’는 이러한 철학을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구체화한 프로젝트다. 높이 140m의 주거 타워는 가느다란 지지 구조(stilts) 위로 들어 올려져 있으며, 마치 하이힐처럼 지면과 관계 맺는 방식을 재해석한다. 또한 그 아래의 땅에는 콘크리트가 덮이지 않는다. 빗물은 현장에서 포집되어 천천히 흐르고, 기존의 나무와 녹지는 보존되며, 토양은 도시의 기후 적응 시스템 일부로 기능한다. 도시가 자연을 밀어내는 대신 자연과 함께 작동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건물 역시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반응한다. 남향 입면에는 태양광 패널을 적용하고, 동향과 서향에는 수직 루버를 설치해 저각도의 햇빛을 제어할 예정이다. 한국 건축 규정상 약 30층마다 요구되는 피난층은 비상시에만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공중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안전 규정을 공동체를 위한 장소로 다시 해석한 셈이다.
카를로 라티는 기술을 미래 건축의 해답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기술이 사람과 자연을 다시 연결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서울 프로젝트 역시 첨단 기술을 과시하기 위한 초고층 건물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 숨 쉬고 적응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하나의 실험이다. 그 연장선에서 기후 위기 시대, 건축이 나아갈 방향과 도시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카를로 라티와 이야기를 나눴다.

수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한 부유식 공공 공간 ‘Aquapraa: A Floating Plaza, 2025’.
© Carlo Ratti Associati
알프스의 암석 지형을 3D 스캔해 형태를 도출한 디지털 제작 산악 대피소 ‘A Digitally Fabricated Bivouac, 2025’.
© Carlo Ratti Associati

서울은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대표적인 기후 위기 도시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도시의 환경은 ‘Climate Adaptive Tower’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어떤 출발점이 되었나? 지난 한 세기 동안 대부분의 도시는 비가 내리면 가능한 한 빨리 물을 도시 밖으로 흘려보내는 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기후가 달라진 지금 우리는 오히려 정반대의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건축은 어떻게 물에 더 많은 시간과 공간을 내어줄 수 있을까.’ 그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 서울을 배경으로 한 ‘Climate Adaptive Tower’ 프로젝트다. 우리는 스펀지 시티(sponge city) 개념을 초고층 주거 건축에 적용하고자 했다. 주거 공간을 가느다란 기둥 위로 들어 올려 지면이 다시 숨 쉴 수 있도록 했다. 건물의 외피 역시 한 가지 형태를 반복하지 않는다. 남향은 태양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동향과 서향은 과도한 일사를 차단하는 등 각 입면이 서로 다른 환경 조건에 맞춰 반응하도록 설계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형태가 아니라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건축이다.

건물을 지면에서 들어 올린 ‘하이힐(high heels)’ 구조는 이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형태적으로도 독특하지만, 이 구조가 도시와 관계 맺는 방식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많은 초고층 건물은 지면을 건물의 일부로 점유하면서 도시와 자연을 단절시키지만, 우리는 건물을 들어 올림으로써 콘크리트가 차지하는 면적을 최소화하고, 기존 녹지를 가능한 한 그대로 보존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지상은 진입 공간 이상의 주민과 도시가 함께 사용하는 열린 광장이다. 정원과 커뮤니티 농장, 다이닝 라운지, 티하우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햇빛 역시 건물 아래까지 충분히 닿는다. 초고층 건축이 도시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는 대신, 도시의 일상 속으로 다시 스며드는 것이다. 결국 ‘Climate Adaptive Tower’는 자연을 보존하는 동시에 공동체를 회복하는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건축은 흔히 기술적 성능을 강조한다. 하지만 ‘Climate Adaptive Tower’는 공공 공간과 공동체에 대한 고민 역시 두드러진다. 기술과 사람 중심의 공간을 어떻게 하나의 건축 안에서 연결하고자 했나? 나는 기술과 공공성을 서로 경쟁하는 가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좋은 건축이라면 두 요소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함께 작동해야 한다. 대표적 사례가 공중 정원이다. 한국의 건축 규정은 약 30층마다 피난층을 설치하도록 요구하지만, 대부분은 비상시에만 사용하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 의무 공간을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중 정원으로 바꿨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만나고 쉬며 도시를 바라보는 장소가 되고, 재난이 발생하면 안전한 대피 공간으로 활용된다. 안전 규정이 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영국 건축가 세드릭 프라이스(Cedric Price)는 “기술은 답이다. 하지만 질문은 무엇이었는가?”라는 말을 남겼는데, 나는 이 문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사람들이 더 나은 도시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싱가포르 고밀도 도심에 열대 자연을 수직적으로 끌어들인 51층 복합 타워 ‘CapitaSpring, 2022’.
© Carlo Ratti Associati / BIG

서울처럼 높은 밀도로 성장한 도시에서 기후 회복력과 삶의 질을 동시에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많은 사람이 밀도가 높을수록 지속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적절한 밀도는 도시가 가진 강력한 자산 가운데 하나다. 홍콩은 세계에서 도시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지만,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상대적으로 낮다. 또 같은 밀도라도 도시의 모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바르셀로나와 맨해튼은 인구밀도가 비슷하지만 도시 풍경은 전혀 다르다. 중요한 것은 건물 높이가 아니라 자연을 도시 안에서 어떻게 이해하느냐다. 우리는 여전히 자연을 도시를 장식하는 요소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후 위기 시대의 자연은 장식이 아니라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나무 몇 그루를 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도시 전체가 자연과 함께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폭염이 일상인 시대에 나무는 가장 오래되고 뛰어난 냉각 시스템이다. 자연을 건축과 도시의 핵심 구조로 통합하는 일이 앞으로 도시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오늘날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건축은 어떤 가치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가 너무 쉽게 사용되는 것에 대해 늘 조심스럽다. 자칫하면 모든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장식적인 수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은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될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순환성(circularity)’이다. 건축은 자원을 계속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순환시키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미 변화한 기후를 전제로 도시를 설계해야 한다. 환경문제와 사회문제 역시 결코 분리할 수 없다. 폭염과 홍수 같은 기후 위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결국 지속 가능한 건축은 환경뿐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MIT 센서블 시티 랩에서 오랫동안 연구해온 도시와 데이터는 건축의 역할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우리가 MIT에서 연구를 시작할 당시에는 ‘스마트 시티(smart city)’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가 늘 조금 불편했다. 스마트 시티라는 개념은 도시를 하나의 기계처럼 최적화하는 데 집중한다. 효율과 데이터, 대시보드는 강조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를 단순히 최적화하는 대상이 아니라 환경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센서블 시티(senseable city)’라는 관점을 발전시켰다. 도시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스스로 반응하며, 사람들에게도 더 현명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데이터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피드백이다. 과거의 건축은 준공과 동시에 완성되는 정적인 결과물이었다. 한번 만들어지면 거의 변하지 않는, 일종의 코르셋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앞으로 건축은 생태계처럼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변화에 반응하며, 스스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앞으로 도시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도시를 더욱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건축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도시는 약 1만 년 전부터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 존재해왔다. 그리고 이후 등장한 모든 기술은 결국 그 근본적인 목적 위에 축적되어왔다. 그래서 나는 서울 프로젝트를 단지 폭우가 왔을 때 얼마나 잘 작동하는 건물인지로만 평가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아무런 재난도 없는 평범한 저녁, 사람들이 건물 아래 정원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이 뛰놀며, 누군가는 차를 마시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잠시 쉬어가는 풍경이 만들어진다면 그 건축은 이미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건축은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일을 넘어 사람들이 머물고 관계 맺는 방식을 설계하는 일이다. 기후에 적응하는 도시 역시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관계를 맺으며 일상을 만들어가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더 회복력 있는 도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정윤(프리랜서)
  • 에디터 손지수
  • 사진 카를로 라티 아소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