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ding the Stage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초기술 시대, ‘몸의 예술’인 무용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무대미술적 요소를 넘어 AI, 생체 데이터, XR 같은 기술이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력으로 들어오고, 예술의 도구였던 ‘몸’은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재정의된다. 최근 현대무용계에서 도드라지는 이 흐름을 읽고 나면, ‘무용’이야말로 ‘기술’과 가장 예민하게 결합하며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들어내는 예술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기술과 예술이 교차하는 최전선에서 실험을 주도하는 안무가와 현대미술가, 그리고 그들의 최신 작업을 소개한다.

〈On the Other Earth〉 & 〈Deepstaria〉 by Wayne Mcregor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는 지금 현대무용계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동시대 무용의 룰 체인저라 할 만하다. 그는 현대무용가로서는 최초로 2006년부터 영국 로열 발레단 상주 안무가로 활동하며 고전발레의 언어를 대담하게 재구성해왔고, 자신의 댄스 팀인 컴퍼니 웨인 맥그리거와 함께 영화 · 음악 · 시각예술 · 기술 · 과학 전반을 가로지르는 협업을 펼치고 있다. 1998년에는 〈Sulphur 16〉을 통해 3D 프로그램으로 만든 ‘가상 무용수’의 움직임을 실제 무용수에게 전이하는 방식 등을 실험했고, 2017년 〈Autobiography〉에서는 자신의 유전 정보를 활용한 알고리즘으로 공연의 장면을 매번 다른 순서로 배열하며 기술을 창작의 엔진으로 끌어들였다. 몸을 단순한 표현의 매체가 아니라 데이터로 분석하고 재조합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봄으로써, ‘움직임’의 예술을 더 다층적으로 감각할 수 있게 한 것. 대표적 프로젝트가 2019년 구글 아트 앤 컬처 랩과 함께 개발한 AI 기반 안무 도구 ‘리빙 아카이브(Living Archive)’다. 다양한 무용수의 움직임을 학습한 이 프로그램은 이후 AISOMA라는 인터랙티브 애플리케이션으로 진화, 창작과 교육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과학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꾸준히 탐구해온 그의 30년을 조망하는 전시 〈Wayne Mcregor: Infinite Bodies〉가 런던 서머싯 하우스에서 열렸다. 전시의 핵심은 ‘세계 최초 포스트-시네마틱 안무 설치’로 소개한 〈On the Other Earth〉다. 관객들은 초고화질 LED 스크린이 360도로 펼쳐진 원통형 공간에 20명씩 초대되어, 영상 속 홍콩 발레단 무용수들의 몸짓을 초근거리에서 체험하게 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각 · 음향 풍경에 둘러싸여 사유를 자극하는 초현실적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야말로 ‘보는 공연’에서 ‘감각하는 공연’으로의 전환을 만들어낸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만하다. 올봄, S아트센터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Deepstaria〉는 심해 해파리 ‘딥스타리아’에서 제목을 가져와, 깊은 바다와 우주를 닮은 ‘공허(void)’를 무대로 소환한 최신작이다. 이 작품에서 웨인 맥그리거는 솔로와 듀오 무용수를 등장시켜 신체의 미세한 분절에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한편, ‘Bronze AI’라는 사운드 프로그램으로 음악이 계속해서 변주되고 재배열되도록 연출해 색다른 몰입의 경험을 선사한다.
〈U>N>I>T>E>D〉 by Chunky Move
호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청키 무브는 여러모로 동시대 무용 신에서 도드라진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들은 센서와 AI, 생체 데이터, XR 기술을 접목해 무용과 기술의 간접적 결합을 꾀하는 대신, 기술이 인간의 신체와 어떻게 직접적으로 결합하고 공존할 수 있는지 다루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의 토템이 기술이라면, 의식의 춤 또한 그것을 수행할 것”이라는 예술감독 앤터니 해밀턴(Antony Hamilton)의 말은 이들의 태도를 정확히 대변한다. 특히 최근 작품들을 보면, 주제를 뒷받침하는 요소로 기술을 활용하기보다는 오히려 ‘테크놀로지의 활용’ 그 자체를 작품 전면에 내세우는 특징이 도드라진다. 2019년 작 〈Universal Estate〉에서는 기이한 기술 오브제 사이에 놓인 인간의 움직임을 탐구했고, 〈Token Armies〉에서는 대규모의 움직이는 조형물을 등장시켜 기술 시대에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후 2022년 작 〈Yung Lung〉은 동시대 클럽 문화의 감각을 무대 언어로 끌어와 신체 경험을 조직하는 기술의 속성에 대해 다뤘으며, 이러한 흐름은 최신작 〈U>N>I>T>E>D〉로 이어진다. 〈U>N>I>T>E>D〉는 ‘춤 공연’이라기보다는 인간과 기계, 영성과 물질성이 뒤엉킨 시대의 ‘미래형 의식’에 가깝다. 작품은 기계 신비주의를 뜻하는 ‘머신 미스티시즘’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몸 · 기계 · 정신의 합성 속에 잠복해 있던 에너지가 깨어나는 서사를 구축한다. 갑옷처럼 견고한 기계장치 애니매트로닉스를 부착한 6명의 무용수는 이를 지배하거나 활용하는 듯 보이다가도, 또 이에 지배당하거나 완전히 합일된 듯한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테크놀로지의 활용과 구속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기술 속에서 인간의 사유와 움직임이 어떻게 변형되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 여기에 미래의 전사처럼 변형된 신체가 빚어내는 절도 있는 몸짓, 전자음악 듀오 가버 모더스 오페란디(abber Modus Operandi)의 폭발적 트랜스 비트, 그리고 주제를 가시화하는 기계 설비와 무대 디자인이 맞물리며, 관객은 마치 집단적 트랜스 상태에 잠긴 듯 압도적 몰입감을 경험한다. 이 작품은 청키 무브가 지금껏 확장해온 미학을 가장 선명하게 응축한 결과물로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아시아-퍼시픽 트리엔날레 오브 퍼포밍 아츠(Asia TOPA)에서 초연한 후 202년 베니스 비엔날레 무용 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돼 유럽에 첫선을 보였고, 현재 세계 주요 무대를 순회하며 공연 중이다.
〈Moving State 1〉 & 〈assimilating〉 by Hiroaki Umeda
우메다 히로아키는 일본 아방가르드 예술 신을 대표하는 안무가이자 다학제적 예술가다. 그는 사진을 전공한 후 신체 경험을 극대화하는 예술에 관심을 가져 발레와 힙합, 모던 댄스 등을 배웠고, 2000년 컴퍼니 S20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춤과 여러 예술 형식을 통합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프랑스 샤요 국립극장에서 2007년 초연한 〈accumulated Layout〉을 시작으로 〈Haptic〉, 〈Holistic Strata〉, 〈Split Flow〉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무용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작품으로 존재감을 키워왔다. 무대는 지극히 미니멀하지만, 신체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빛’으로 표현한 듯 강렬한 디지털 시노그래피가 그가 만드는 무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그의 독특한 미학과 세계관이 자리한다. 그는 세상 만물이 원자와 양성자로 용해될 때, 결국 인간과 사물, 인공과 자연의 차이는 없다는 시각을 견지한다. 따라서 우메다의 무대 위에서 ‘몸’과 ‘춤’은 주인공이 아니라 빛, 소리 혹은 특정한 자극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인터페이스’라 할 수 있다. 이렇듯 20여 년간 이어온 그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날 수 있는 공연이 오는 3월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열린다. ‘소매틱 필드 프로젝트(Somatic Field Project)’의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Moving State 1〉, 그리고 우메다 자신의 솔로 퍼포먼스 〈assimilating〉으로, 두 작품은 ‘행동 디자인’과 움직임 속 사물의 태도를 무용의 미학을 기반으로 탐구하며, 정교한 신체성이 사이버 아트와 결합하는 지점을 펼쳐 보인다. 〈Moving State 1〉은 무용수 4명의 몸을 마치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묶고, 빛이 그 4개의 몸을 어떻게 동기화하고 어긋나게 하는지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새롭게 프로그래밍한다. 반면, 〈assimilating〉은 우메다 자신의 몸을 통해 그 장치들을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솔로 작품이다. 작품에서 퍼포머는 주체로 드러나기보다 환경에 흡수되는 존재로 기능한다. 이 작품 역시 인물은 사운드와 빛의 규칙에 따라 윤곽이 지워지거나 강조되는 식으로 움직이며, 기술 속에서 지금 이 시대의 신체가 어떻게 재구성되고 움직일 수 있는지 정밀하게 보여준다. “디지털로 제어된 시간과 공간의 섬세함으로만 실현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미적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우메다의 말처럼, 그는 ‘기술 시대’에 놓인 ‘신체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독자적 예술 장르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Mirror〉 & 〈The Rite of Spring〉 by Alexander Whitley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알렉산더 휘틀리는 ‘무용’과 ‘기술’의 만남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로열 발레 스쿨에서 정통 발레 교육을 받았고, 이후 실시간 모션 캡처와 AI 같은 기술을 동시대 무용에 과감하게 접목해 무용 언어의 확장을 이끌어왔다. “디지털 기술은 문화를 증폭시키고 인간의 역량을 확장하는 도구로, 예술의 도달 범위를 넓히고 접근성을 확장한다”는 그의 믿음처럼, 휘틀리의 작업은 신체적 창의성과 기술적 창의성이 만날 때 ‘몸의 예술’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는 확신 위에서 출발한다. 대표작으로 과학과 춤을 결합한 몰입형 멀티미디어 무대로 화제를 모은 2017년 작 〈8 Minutes〉, 인간 신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 2022년 작 〈Anti-Body〉 등이 있다. 그리고 올봄, 알렉산더 휘틀리의 신작 〈Mirror〉와 〈The Rite of Spring〉이 마침내 무대에 오른다. 현대무용계의 심장이라 불리는 런던의 새들러스 웰스 이스트에서 3월 네 차례 〈Mirror〉와 〈The Rite of Spring〉을 더블빌로 초연하는 것. 〈Mirror〉는 제목 그대로, 지금의 우리를 비추는 AI라는 기술적 환경을 무대 위에 투사한다. 무용수들은 실시간 모션 캡처와 AI가 생성하는 디지털 이미지와 즉각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몸과 기술이 서로 반응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변형되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휘틀리는 ‘지능형 시스템’에 의해 관찰되고 형성되며 해석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감각을 남기는지 질문을 던진다. 스트라빈스키가 남긴 걸작 〈The Rite of Spring〉 또한 휘틀리의 안무가적 역량과 동시대성을 가늠하게 하는 작품이다. 〈Mirror〉를 통해 ‘AI 거울’이 만들어낸 신체 감각을 먼저 체험하게 한 뒤, 〈The Rite of Spring〉에서 그는 ‘AI에 사로잡힌 집단’의 초상을 그리며 질문을 공동체의 범위로 확장한다. “〈Mirror〉가 친밀한 관계의 렌즈를 통해 AI를 바라본다면, 〈The Rite of Spring〉은 그 탐구 대상을 공동체의 범위로 넓힙니다. 두 작품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를 잘 보여줍니다. 새로운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 그 기술이 초래하는 더 깊은 사회적 변화를 예술적으로 사유하고 관객과 연결하는 것 말입니다.” 두 작품에 대한 휘틀리의 설명이다. 테크놀로지가 깊숙이 개입한 작품임에도, 무대가 차갑기보다는 오히려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은 그의 작업에 깃든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세밀한 몸의 언어에 통달한 이가 기술에 대한 감각까지 갖추었을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유려한 장관, 그것이야말로 알렉산더 휘틀리의 작업이 선명하게 돌출되는 지점이다.
〈Delusional World〉 by Lu Yang and Louise Lecavalier
캐나다의 전설적 무용수 루이즈 르카발리에와 중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루양이 손잡은 라이브 모션 캡처 퍼포먼스 〈Delusional World〉는 동시대 예술계를 통틀어 가장 파격적이며 독특한 프로젝트라 할 만하다. 2023년 몬트리올 ‘국제 디지털 아트 비엔날레(International Digital Art Biennial, BIAN)’에서 공개한 이 작품은 ‘미디어 아티스트’와 ‘무용수’가 한 작품에서 그들의 본업을 충실히 이행할 때,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강렬한 비주얼로 전달한다. 이 작업은 캐나다 초연에 이어 올해 1월 ‘무용과 기술을 위한 축제’라는 부제를 내건 ‘템프 디마주(Temps d’Images)’의 개막작으로 선정, 독일에서 초연하기도 했다. 현재 상하이와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는 루양은 동시대 뉴미디어 아트 신에서 ‘기술’과 ‘몸’의 관계를 가장 급진적으로 재구성해온 작가다. 그는 3D 애니메이션, 게임 엔진, 모션 캡처, VR 같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데이터화되고 또 변이될 수 있는지 탐구해왔다. 특히 불교의 윤회, 신경과학, 일본 만가와 클럽 문화 같은 레퍼런스는 꾸준히 그의 작업에서 하나의 세계관으로 결집되어 나타나고 있다. 반면 루이즈 르카발리에는 캐나다를 현대무용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한 상징적 인물로, ‘금발의 토네이도’라는 별명처럼 폭발적인 속도와 추진력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켜왔다. 〈Delusional World〉에서 르카발리에는 약 30분간 센서 슈트를 부착한 채 즉흥적 실연을 펼치고, 그 움직임은 모션 캡처 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디지털 아바타로 변환된다. 무용수의 몸은 곧바로 스크린 속 초현실적 존재로 변이하며, 때로는 천수관음 같은 불교 · 힌두의 신, 머리 셋 달린 채 몸통이 사라진 그로테스크한 형상까지 등장해 관객에게 혼란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 작품의 설계자 루양은 “불교의 ‘무아(無我)’ 개념은 자아는 고정되거나 영구적인 실체가 아니라 일시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성물임을 깨닫게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작품 속 ‘디지털 아바타’는 바로 그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실체화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현란한 가상 세계의 비주얼에서도 끝내 마음에 남는 것은, 그 변환을 견디며 무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무용수의 살아 있는 몸이다. 기술이 오히려 몸의 본질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는 역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Delusional World〉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강한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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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e Mortals〉 by San Francisco Ballet
2024년 샌프란시스코 발레가 〈Mere Mortals〉를 처음 선보였을 때, 저명한 클래식 매거진 〈Bachtrack〉의 평론가 테레즈 로즈(Terez Rose)는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Mere Mortals〉가 해낸 일은 분명하다. 그것은 2024년의 발레가 얼마나 동시대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동시대가 얼마나 발레 안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한 매혹적인 대화를 촉발했다. 시대의 감각, 날카로움, 음악적 혼성, AI까지, 모든 것이 ‘지금’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이 말처럼 〈Mere Mortals〉는 기존 발레 문법을 과감하게 전복하는 동시에, 동시대적 주제 의식으로 강렬한 파격을 선보인다. 고대 시인 헤시오도스의 판도라 신화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AI’라는 시대적 조건을 그 자리에 치환하며, 기술의 진보가 초래한 윤리적 딜레마와 예기치 못한 후폭풍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작품의 모든 요소를 치밀하게 설계했지만, 그 중심축은 단연 무대 디자인과 음악이다. 바르셀로나 기반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하밀 인더스트리(Hamill Industries)’는 최첨단 AI 기반 비주얼을 구축, 무대 뒤편의 이동식 LED 스크린 패널에 투사함으로써 장면 전환과 분위기 조성을 이끈다. 마치 천지창조의 순간을 연상시키는 듯한 붉은 화염이 무대 뒤로 쏟아져 내리거나, 신비로운 섬광이 무대 한가운데로 내리꽂히는 듯한 드라마틱한 장면은 전통적 무대 디자인의 감각을 단숨에 지워버릴 만큼 강렬하다. 또 하나의 축은 작품에 ‘동시대적’ 기운을 선명하게 불어넣는 음악이다. 음악을 맡은 영국 작곡가이자 DJ인 샘 셰퍼드(Sam Shepherd)는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전자악기를 결합한 라이브 믹싱으로 무대의 생동감을 극대화한다. 그는 매번 공연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이브로 연주할 뿐 아니라, 신시사이저를 통해 사운드를 실시간으로 해석하고 반복 재생하며 작품의 ‘미래적’ 감각을 더욱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발레에서 오랫동안 견고하게 유지해온 젠더 규범을 뒤집고, 모든 무용수가 비슷한 실루엣의 동일한 의상을 입고 등장해 주제성을 밀어붙이는 것도 설득력을 더한다. 리드미컬한 포메이션 속에서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정교한 군무는 이 작품이 끝내 ‘발레’라는 장르의 핵심을 놓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Mere Mortals〉는 2026년 시즌 샌프란시스코 발레의 주요 레퍼토리로 4월부터 총 11회 무대에 오르며, 이후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 투어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