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것의 낭만 | Nobl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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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은 것의 낭만

CULTURE

가장 미세한 것들이 우주적 스케일로 번져나가는 순간, 보이지 않는 경이로운 세계가 열린다.

‘Blutenstaub von Haselnuss’, 2020~2023. Photo by Franca Candrian, Kunsthaus Zurich. © Wolfgang Laib

볼프강 라이프 Wolfgang Laib

꽃가루와 우유, 밀랍, 쌀, 돌처럼 자연에서 얻은 가장 근원적인 재료를 통해 삶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해온 볼프강 라이프. 의학을 공부한 그는 물질적·논리적 사고에 기반한 서구 자연과학의 한계를 자각하며 예술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힌두교·불교·도교를 비롯한 동양의 철학과 영성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수십 년간 이어온 꽃가루 작업은 그의 대표 연작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입자를 쌓아 자연에 내재된 생명 에너지와 우주의 질서를 드러낸다. 강렬한 노란색과 절제된 형상 속 수많은 입자가 만들어내는 압도적 존재감은 관람자를 명상적 사유의 공간으로 이끈다. 가장 작고 가벼운 물질을 통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가 하나의 질서 안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작가는 사소한 것에 깃든 경이와 초월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올가을까지 스위스 취리히 쿤스트하우스에서 그의 오랜 탐구를 조명하는 전시 〈Touching the Essential〉을 만날 수 있다.

‘Untitled(Bleachers series)’, Dust, Dirt, Meteorite Particles on Oxidised Cotton and Linen, 220×160cm, 2025. Photo by Gert Jan van Rooij

프랑크 아머란 Frank Ammerlaan

흙과 먼지, 빗물과 햇빛처럼 자연의 힘을 재료이자 공동 창작자로 끌어들이는 프랑크 아머만. 그는 천을 장시간 야외에 노출시키는 과정을 통해 비와 먼지, 태양 등 자연의 시간과 흔적이 담긴 회화를 완성한다. ‘Bleachers’ 시리즈는 표백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섬세한 색의 그러데이션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변화의 흔적을 드러낸다. 색이 햇빛 아래에서 서서히 바래듯, 화면 위에는 자연이 지나간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진다. 서맨사 하비의 소설 〈Orbital〉에서 영감받은 이 작업은 우주정거장에 머무는 우주인의 시선처럼 지구를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작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질서를 담아내며, 우주적 규모의 풍경을 사유하도록 이끈다.

‘Dust of Suns II’(Detail), LPDS Solution, Acrylic, Aluminum, Solenoid Valve, Motor, Microcontroller, 268×205×205cm, 2022.

김윤철 Kim Yunchul

예술과 과학, 기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물질의 잠재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김윤철은 빛과 유체, 진동, 입자 같은 비가시적 현상을 작품에 구현한다. 오랜 시간 물질의 생성과 변화에 주목해온 그는 ‘Dust of Suns II’에서 광물을 나노 크기 입자로 변환해 만든 액체가 기계장치와 튜브를 따라 순환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액체의 흐름과 밀도의 변화는 빛과 만나 다채로운 색채와 패턴을 만들어내며, 물질이 스스로 움직이고 반응하는 능동적인 존재처럼 작동한다. 나노 입자와 자성 유체, 광결정 등 다양한 물질의 특성과 변화를 탐구해온 그는 인간의 인식 너머에서 작동하는 물질 세계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