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시작된 월리스 챈의 새로운 여정
오래된 성당 안에 거대한 티타늄 조각이 들어섰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월리스 챈은《Vessels of Other Worlds》를 통해 베니스와 상하이를 하나의 감각으로 연결했다. 사색과 몰입 사이를 오가는 이번 전시는 월리스 챈 작업의 새로운 확장을 보여준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의 베니스는 도시 전체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16세기 궁전 안에서는 동시대 영상 작업이 상영되고 오래된 성당에는 낯선 조각들이 들어섭니다. 물 위를 오가는 보트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컬렉터, 큐레이터, 아티스트들 사이로 도시에는 특유의 긴장감이 감돕니다. 현실과 예술의 경계가 잠시 흐려지는 순간들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2026년 5월, 그 풍경 한가운데서 홍콩 출신 아티스트 월리스 챈(Wallace Chan)은 전시 《Vessels of Other Worlds》를 선보였습니다.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공개된 이번 프로젝트는 베니스와 상하이를 연결하는 대규모 듀얼 사이트 전시입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단순히 두 도시를 연결하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물질과 영성, 기억과 시간 같은 월리스 챈의 오랜 관심사를 서로 다른 두 공간 안에서 펼쳐 보였습니다.
월리스 챈은 오랫동안 빛과 시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감각을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보석 조각에서 출발한 그의 탐구는 티타늄이라는 재료를 만나며 더욱 확장됐고 이번 전시에서는 마침내 건축적인 규모에 도달했습니다. 베니스의 성스러운 공간과 상하이의 거대한 도시 에너지 사이에서 그의 조각은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관객이 직접 경험하는 공간으로 작동했습니다.
전시 《Vessels of Other Worlds》를 통해 월리스 챈이 이야기하고자 한 ‘다른 세계들’은 무엇이었을까요. 베니스와 상하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공간 안에서 그가 바라본 삶과 시간 그리고 물질에 대한 생각을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Vessels of Other Worlds》는 작가님의 작업 세계에서 중요한 진화처럼 느껴집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전 작업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Vessels of Other Worlds》가 제 작업의 여러 방향성을 이전보다 더욱 완전하게 결합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베니스와 상하이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전시이며 새로운 대형 티타늄 조각 시리즈를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또한 하나의 공간이 아닌 전혀 다른 두 공간 속에서 작품이 펼쳐진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베니스에서는 작품이 보다 친밀하고 사색적입니다. 작품들은 가톨릭 의식에서 사용되는 세 가지 성유(聖油)와 연결되어 있으며 예배당이라는 공간이 전시에 영적이고 내면적인 분위기를 부여합니다. 반면 상하이에서는 동일한 작품들이 각각 7미터, 8미터, 10미터 규모의 형태로 등장하고 그중 하나는 실제로 내부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사색에서 몰입으로 이동합니다. 전시는 두 도시, 두 가지 스케일, 그리고 작품을 경험하는 두 방식 사이의 대화가 됩니다.


전시 제목인 《Vessels of Other Worlds》에서 ‘Other Worlds’라는 표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작가님에게 ‘다른 세계들’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다른 세계들’(Other worlds)은 단순히 먼 어딘가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즉시 볼 수 없는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내면의 공간이 있고 기억의 공간이 있으며 영혼의 차원 그리고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저는 우리가 동시에 하나 이상의 층위 안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물리적인 현실 안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감정과 상상력, 믿음, 시간으로 이루어진 감각 안에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다른 세계들’은 더 넓은 현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삶은 단지 눈에 보이거나 측정 가능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죠. 저는 언제나 예술이 이러한 감각 사이를 이동하게 해준다고 믿어왔습니다. 예술은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고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시선을 옮기게 합니다.



이번 전시는 탄생, 성장, 죽음의 순환을 탐구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주제에 끌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탄생, 성장, 죽음은 모든 것의 일부입니다. 인간의 삶뿐 아니라 아이디어와 형태, 시간 자체에도 존재하죠. 저는 이 순환을 자연스럽고 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모든 단계는 결국 변형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은 이 조각 작품을 ‘그릇(vessel)’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그릇들은 무엇을 담고 있나요? 그릇이라는 개념은 존재와 공허를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허는 단순히 ‘비어 있음’이 아니라, 아직 채워지지 않은 가능성의 상태입니다. 삶 속에서 공허는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의미하고 죽음 속에서의 공허 또한 사라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생성 가능성으로 남습니다. 결국 이 그릇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사라지는 것과 지속되는 것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티타늄이라는 재료를 사용하게 된 계기와 그것이 작가님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었는지 궁금합니다. 티타늄은 약 25년 전에 제 작업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것을 주얼리 작업에 활용할 수 있기까지 8년 동안 연구했고 그것이 결국 대형 조각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티타늄이 저를 끌어당긴 이유는 그 독특한 성질 때문이었습니다. 매우 가볍지만 강하고, 철처럼 쉽게 부식되지 않죠. 그것은 구조와 색채, 스케일에 대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작가님의 시그너처인 ‘Wallace Cut’ 기법은 이번 전시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나요? 월리스 컷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영감 중 하나입니다. 예술가가 하나의 주제를 반복해서 탐구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월리스 컷에서 그 주제는 시간, 빛, 변화 그리고 반사입니다. 상하이 전시에서는 8미터 규모의 작품이 관객을 내부로 초대하는데, 그 만화경 같은 내부 공간은 월리스 컷을 직접적으로 참조한 거울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래 보석 기법에서는 하나의 조각된 이미지가 빛과 반사를 통해 여러 이미지로 확장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원리가 공간 자체로 확장된 것입니다.


이러한 ‘공간 자체의 확장’ 개념이 베니스와 상하이를 연결한 이원 전시로 이어진 것인가요? 저는 이미 이 ‘그릇들(vessels)’을 만들고 있던 중에 두 도시를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릇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이동과 확장의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롱 뮤지엄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두 도시를 잇는 하나의 서사이기도 합니다.
베니스와 상하이, 이 두 도시는 같은 작품을 어떻게 다르게 경험하게 만드나요? 베니스에서는 작품들이 산타 마리아 델라 피에타(Chapel of Santa Maria della Pietà)라는 역사적이고 성스러운 공간 안에 놓이기 때문에, 경험은 훨씬 더 사색적이고 내면적이며 성찰에 가깝습니다. 그 공간 자체가 고요함과 몰입을 요구합니다. 반면 상하이에서는 규모가 경험을 완전히 바꿉니다. 작품들은 본래의 스케일로 솟아오르고, 중심 작품인 <Growth>는 관객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작품은 더 이상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몸으로 통과하는 환경이 됩니다. 그래서 베니스가 명상에 가깝다면, 상하이는 몰입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나 묵상에 가까운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적인 체험입니다. 하지만 두 전시는 여전히 하나의 개념 안에 있으며, 모두 ‘그릇’이 어떻게 변형과 경험을 담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조각이 어떻게 일상의 공간을 넘어서는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장인정신과 물질성, 그리고 사유적인 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과 한국 관객 사이에 어떤 연결점을 느끼시나요? 한국은 장인정신과 재료 그리고 과정에 대한 깊은 존중을 가진 나라입니다. 도자기, 금속공예, 옻칠 같은 전통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고 현대미술에서도 재료와 사유 그리고 사색에 큰 무게를 두는 태도가 보입니다. 그런 점이 제 작업과도 매우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매우 천천히 작업하며 재료가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합니다. 저에게 재료는 곧 생명입니다. 재료는 시간과 노력, 감정과 영혼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관객들은 제 작업이 지닌 진지함을 자연스럽게 알아봐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노블레스> 독자들에게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떤 메시지나 감정을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관객들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직접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각자의 기억과 감정, 경험, 질문을 가져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작품이 그런 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에디터 박재만
- 사진 월리스 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