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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에서 길어올린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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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체임버스의 강렬한 전환의 순간을 선사하지만, 그 과정은 한없이 부드럽고 섬세하며 무엇보다 초월적이다.

도미닉 체임버스 색면 회화, 행위적 추상 등의 미술사 모델과 인종, 정체성, 여가 및 성찰의 필요 같은 동시대적 관심사를 다룬 강렬하고 생기 넘치는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1993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나 현재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거주 중이다. 개인과 세상의 관계를 이해하거나 재맥락화 혹은 재타협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예술의 기능에 관심을 두고 회화를 심미적인 것만큼이나 비판적이고 지적인 시도로 바라본다.

2023년 세인트루이스 현대미술관 개인전 〈Birthplace〉 도록에 수록된 글에서 예술가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난 순간에 대해 말했어요. 당시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으며 예술에 관해 어떤 믿음이 있었나요? 어디론가 도망치려던 건 아니고 비로소 제가 속해야 할 자리를 발견했던 것 같아요. 세인트루이스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하면서 난생처음으로 열정적인 창작자들 사이에 놓이게 됐어요. 다들 저처럼 ‘이미지의 힘’에 진심이었죠. 그들과 대화하며 제 작업의 수준을 가늠했고, 수업을 들을수록 예술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은 커졌습니다. 그 시절 예술에 대한 제 믿음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제게 예술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물질적 구현이며, 직접 닿진 못할지라도 어떤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으로 나아가는 다리예요. 또한 예술가는 집단의 대화라는 오아시스에서 자신의 작업을 길러낼 책임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란 제가 속한 공동체와의 ‘약속’이기도 하죠.
W. E. B. 듀보이스가 제시한 ‘베일(The Veil)’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과 백인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인종적 장벽을 뜻하는 개념으로, 작업의 중요한 철학적 토대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흑인에 대한 인식을 보다 섬세한 언어로 풀어내왔어요. 그 결과 작품엔 서정적 분위기에서 느긋하게 쉬는 인물들이 등장하게 됐죠. 역사적으로 흑인을 재현해온 방식은 온전하지 않았어요. 이미지 속 흑인의 몸은 백인 주변에 머물렀고, 자유의지가 있지만 주체성이 결여된 존재처럼 그리곤 했죠. 저는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이미지를 믿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여가’와 ‘일상’을 중심에 두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습니다. 우리는 끝없는 정신적 소모와 긴장 속에 살고, 늘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지는데 그중 상당수는 건강하지 않아요. 제게 여가란 이 고된 현실과 물가 상승의 압박 속에서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그려낼 중요한 틀입니다.

The Body Shimmer (Trevor, the Wishing), Oil on linen, 138×116.5cm, 2026.
Sighting: Forest Rorschach, Oil on linen, 152.5×153cm, 2026.

작품 속에는 풀밭에 앉아 책을 읽거나 쉬는 모습뿐 아니라 연이나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모습도 자주 등장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제 작업에서 연과 종이비행기는 어린 시절 느낀 경이와 역동적인 놀이의 순간을 상징해요. 환영이나 밝은 심상을 드러내고 싶을 때 사용하죠. 동시에 흥미로운 사실은, 이 연과 종이비행기가 과거에는 전쟁이나 과학과 밀접한 관계였다는 거예요. 중국에서 발명된 연은 적을 정찰하고 불을 지르는 도구로 사용해 사실상 최초의 드론이나 다름없었어요. 종이비행기도 기체역학 연구를 위한 실험에 사용됐고요. 우리 기억에 온화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사물이 이런 역사를 써왔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는 제 아시아 첫 개인전 〈바디 쉬머〉의 ‘The Body Shimmer (Bright Thoughts #3)’에도 이런 장치가 있어요. 허공에 떠 있는 불투명한 사각형으로, 아직 제가 그리지 못한 그림을 비롯해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는 무엇을 암시하죠. 듀보이스와 제임스 볼드윈, 메리 올리버 등의 글도 작업의 중요한 철학적 토대예요.
독서를 단순한 지적 활동을 넘어선 ‘변혁적 행위’라고 말했죠. 마음속 깊이 박혀 작업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문장이 있나요? 정말 많은데, 제가 마음이 흔들릴 때 자주 찾게 되는 건 르네 마그리트의 문장이에요. “회화의 역할은 시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리만머핀 서울에서 최초로 공개한 ‘The Body Shimmer’ 시리즈의 배경은 주로 한밤중이나 새벽녘의 깊은 숲이에요. 이런 배경에 몰두한 계기가 있을까요?
숲은 제가 집과 작업실을 벗어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에요. 밤하늘도 늘 관심의 대상이었죠. 도시의 인공조명에 물들지 않은 밤하늘이 전하는 시적 정서가 유독 와 닿았어요. 밤하늘과 별을 소재로 흥미롭고 신선한 회화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에요. 비야 셀민스 같은 작가가 별의 고유한 성격을 포착하기 위해 느리고 명상적인 방식을 택했다면, 저는 표면에 스텐실을 사용하는 데엔 관심이 없어서 유화의 농도를 조절하는 희석제인 미네랄 스피릿을 사용했어요. 일종의 ‘물성의 교란’을 통해 만들어낸 별이죠. 저는 단순히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넘어 보는 사람에게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제게 하나의 그림은 하나의 시예요. 누군가 제 작품을 마주할 때 시를 읽는 것 같은 경험을 하길 바라며 작업합니다.

The Body Shimmer (Tre, the Passionate), Oil on linen, 137.5×117cm, 2026. Photo by Studio Kukla. Courtesy of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The Body Shimmer (Bright Thoughts #3), Oil on linen, 152.5×183cm, 2026. Photo by Studio Kukla. Courtesy of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The Body Shimmer’ 시리즈에서 새롭게 시도한 인물 표현 역시 흥미로워요. 투명한 막을 씌운 것 같기도 하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처럼 빛을 발하죠. 이토록 ‘빛나는 신체’를 고안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The Body Shimmer’는 누구에게나 내재돼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빛에 대해 말해요. 우린 모두 저마다 빛을 발하고, 제겐 모든 사람이 지상에 발 붙인 별 같습니다. 제가 그리는 대상은 모두 상상 속 인물이고 인종적으로는 흑인으로 설정돼 있는데, 여기엔 공동체를 하나의 별자리로 보는 시각도 작용해요. 미국 흑인 공동체의 역사를 고려해보면 아마 그 별자리는 공백이 가득할 겁니다. 반짝이는 제 그림은 흑인 청년들을 사유의 자리로 앞세워요. 하지만 그들이 내는 빛은 개개인의 몸에서 배어난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화면이 현실의 긴장이나 갈등을 중화하진 않을까요? 관람객이 작품에 숨은 사회적 맥락을 읽지 못하고 감성적으로 이미지를 소비할 가능성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 세계의 긴장을 담아내는 이미지는 이미 충분하다고 봐요. 세상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곳이기에 그런 작업은 필요하고, 분명 그에 합당한 위치가 있죠. 하지만 다른 관점도 필요해요. 제 이미지는 우리 상상력의 또 다른 지점을 겨냥하며 세상 속 갈등을 향해 조용히 제안합니다.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작업은 비판 이후를 이야기하진 않아요. 저는 대안적 현실을 제시하는 이미지에 끌리고 이게 오히려 더 도전적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어쩌면 그 자체를 온전히 마주하는 일 아닐까요. 케리 제임스 마셜의 검은 단색화가 좋은 예죠. 이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화면을 가득 채운 깊고 섬세한 검정에 먼저 압도됩니다. 그러다 그 장면이 단순한 일상의 한 순간이 아니라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프레드 햄프턴이 죽기 직전 연인과 함께 누워 있던 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이렇듯 화면에 깊이 몰입하는 과정은 작품의 더 깊은 맥락에 도달하게 하는 중요한 다리가 될 수 있어요.

Shinedown, Oil on linen, 138.5×130.5cm, 2026. Photo by Studio Kukla. Courtesy of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LaStella’s Grove, Oil on linen, 168×141.5cm, 2026. Photo by Studio Kukla. Courtesy of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작가님의 회화는 다분히 초현실적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디지털 기술로 누구나 손쉽게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해요. 이러한 때에 회화라는 느리고 고된 노동을 통해 구현한 또 다른 현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신뢰하지 않아요. 완벽한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회화의 과정은 단지 어떤 고민을 사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몸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불안을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이거든요. 현재 우리가 각자 처한 상황은 이미 현실을 넘어선 수준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겐 초현실주의가 필요합니다. 그건 이 복잡한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사고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보면 볼수록 그림 속 인물을 넘어 결국 ‘나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돼요. 오늘날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나요? 세상이 언제나 당신에게 온전히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무언가를 읽거나 쓰고, 그려보세요. 그리고 연을 날리듯 그것을 세상으로 띄워 보내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당신을 찾아오는 이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일 때마다 저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이 문장을 떠올리곤 합니다. “결국 너는 너 자신이 되고야 만다(Although of course you end up becoming yourself).”

  • 사진 김형상(인물), 리만머핀(작품)
  • 에디터 윤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