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더를 위해 태어난 정원
필라델피아 박물관 지구에 알렉산더 콜더를 기념하는 특별한 장소가 들어섰다. 미술관 건축의 대가 헤어초크 & 드 뫼롱이 설계하고, 시적 조경 설계의 마술사 핏 아우돌프가 정원을 꾸몄다. 그리고 그 모든 섬세한 설계의 빈 공간에는 콜더의 마법 같은 조각이 무심히 자리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조각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의 고향, 미국 필라델피아에 그의 작품과 유산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들어섰다. 이름하여 ‘콜더 가든(Calder Gardens)’이다. 이 프로젝트는 콜더의 친손자이자 콜더 재단 회장인 샌디 로어(Sandy Rower)가 기획한 프로젝트로, 오랜 기간 그의 작품 세계를 기리고자 하는 염원에서 비롯해 지난 9월 21일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누군가는 새로운 미술관의 오픈 소식에 하우저 앤 워스 갤러리의 정원 혹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잔디밭에서 감질나게 만나던 콜더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대한 콜더 작품, 헤어초크 & 드 뫼롱의 아찔한 현대건축의 조화를 목도하고자 하는 의도라면 차분히 그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예상과 달리 건축 부지와 건축물, 컬렉션 등 모든 면에서 단 한 명의 예술가를 기리는 아름다운 ‘미술관’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외성은 설계를 맡은 헤어초크 & 드 뫼롱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공간은 우리가 지금까지 작업해온 어떤 의뢰작과도 완전히 달랐고, 개방적이었습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콜더의 작품을 떠올릴 때 연상할 수 있는 전형적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공간적 맥락 속에서 예술 작품이 지닌 다양성과 모호함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박물관도, 수장고도, 미술관도 아니어야 했죠.” 프로젝트 초기부터 건축물에 대한 별다른 요구 사항을 제시하지 않던 콜더 재단이 제안한 단 한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그 어떤 박물관과도 다른, 친밀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이자 예술과 건축, 자연과 창의성이 대화하는 장을 창조하라’는 것이었다.
공간의 독창성은 부지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콜더 가든은 필라델피아에서 주요 미술관들이 밀집해 있는 박물관 지구의 중심축에 자리하나 두 개의 고속도로와 인접한 유휴지에 세웠다. 맞은편의 반스 파운데이션과 로댕 뮤지엄, 북서쪽의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이 갖춘 위풍당당한 면모에 비견하면 어이없을 정도로 초라한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개념이 ‘정원’이다. 드러나지 않는 건축으로 인근 미술관들의 기념비적 건축양식과 오히려 대비를 이끌어내며, 핏 아우돌프의 ‘정원’을 그 얼굴로 만들자는 것. 자연을 통해 공간과 분위기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해내는 아우돌프의 솜씨는 그 땅 위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실내로 통하는 선큰 공간, 외부에서의 진입로를 둘러싼 플랜팅 조감도는 마치 ‘자연으로 직조한 아름다운 직물’을 보는 듯하다. 노스 22번가 입구에서 만나는 어린 참나무와 늪지나무, 정원 중심부에 심은 콘플라워와 세이지, 노스 21번가 근처에 자리 잡은 유파토리움과 마키아나무까지,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이 작은 생태계는 여유로운 정서적 배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콜더가 추구한 ‘시간과 변화’의 예술적 개념과도 완벽히 맞닿는다. “저는 콜더가 자신의 예술을 정의하는 요소로 강력하게 포용한 움직임과 변화에 응답하는 풍경을 설계했습니다. 콜더의 작품들과 이 식물들은 앞으로 수십 년간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며 변화해나갈 것입니다.” 핏 아우돌프의 설명이다.
헤어초크 & 드 뫼롱도 이에 상응하는 해답을 내놓았다. 고속도로와 인접한 면에 날카로운 알루미늄 구조물을 세워 명확한 경계를 만드는 한편, 정원에서 이어지는 산책로가 수렴하는 원형 광장에는 미술관이 시작된다는 표식과도 같은 캐노피를 설치했다. 사실상 번듯한 화이트 큐브가 존재하지 않는 이 공간은 구릉 같은 정원 아래로 내려가야 만날 수 있는 선큰 형식을 띠고 있다. 빛이 쏟아지는 ‘오픈 플랜 갤러리(Open Plan Gallery)’, 동굴 같은 계단을 활용한 ‘콰시 갤러리(Quasi Gallery)’, 그리고 콘크리트로 거칠게 마감한 ‘베스티지 가든(Vestige Garden)’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생겨난 여백에 콜더의 모빌이 매달려 있거나 세워져 있는 식이다. “콜더 가든은 일종의 ‘무설계(無設計)’ 건축을 구현한 공간입니다.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듯, 편안하게 앉아 예술이나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죠.” 이곳에 설치한 모든 작품에는 단 한 줄의 작품명이나 간략한 작품 캡션도 붙어 있지 않다. 살아생전 알렉산더 콜더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론은 작가 본인에게는 유용할지 몰라도, 타인에게 전파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콜더 가든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말 아닐까? 예술, 자연, 건축을 하나의 통합된 풍경으로 묶고, 그것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것. 알렉산더 콜더가 하늘에서 이 공간을 본다면, 과연 무어라 평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