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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런웨이까지, 카디건의 서사

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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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서사를 이어가는 카디건 이야기.

코코 샤넬. @sharapanovskaya_maryna
CHANEL
1992 S/S CHANEL @90s_iconicsupermodels
프랜시스 그랜트의 그림 ‘제임스 브루더넬, 제 7대 카디건 백작’. © Picryl

카디건은 추울 때 보온을 돕는 것은 물론, 신체를 보호하고 활동을 보장하는 겨울 레이어링의 꽃과도 같은 존재다. 주변을 둘러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익숙한 패션 아이템이기에 어깨에 걸치거나 머플러로 활용하는 등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변화하는 환경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탄생한 카디건이 생활 속에 밀접하게 흘러 들어온 이유다. 단순히 추울 때 덧입는 옷으로 치부하기에는 2026 S/S 시즌에도 돌체앤가바나, 루이 비통, 샤넬, 셀린느 등 많은 디자이너가 여전히 카디건의 용도를 틀에 가두지 않는다. 카디건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새롭게 제시되어왔다는 이야기다. 남성복에서 유래한 많은 기성복이 그렇듯이 카디건 역시 전쟁에서 비롯했다. 카디건은 1854년 크림전쟁이 한창일 때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러시아군 포병이 진을 치고 있는 계곡 사이로 기병대를 진격시킨 영국 장교 제임스 브루더넬 백작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 영국의 제7대 카디건 백작이던 그는 전술상 자살 돌격 같던 전투에서 간신히 목표 지점에 도달한 인물이다. 당시 그는 무자비한 명령으로 병사들을 숨지게 해 귀국 직후 법정에 섰지만, 1857년 영국 지배에 저항하는 세포이 항쟁이 일어나면서 재판은 흐지부지됐다. 이후 만연해진 애국주의가 그를 영국군의 위세를 전 유럽에 떨친 인물로 과대 포장한 것이다. 그는 종종 보온을 위해 코트 안에 니트로 짠 단추 달린 조끼를 입고 다녔는데, 이후 코트의 뒷자락이 불에 타면서 조끼에 소매를 붙이고 뒷자락을 짧게 만든 형태로 변형해 착용했다. 이를 본 대중들이 전쟁 영웅의 스타일과 취향을 따라 하면서 오늘날 카디건의 시초가 되었다. 전장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백작이 카디건을 고안했다는 무용담과 함께.

DOLCE&GABBANA
LOUIS VUITTON
CELINE
제임스 브루더넬 백작. @preppyhandbookfanclub

남성의 전유물이던 카디건이 여성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가브리엘 샤넬의 영향이 컸다. 머리 위로 입는 풀오버 스웨터 때문에 공들여 만진 머리 모양이 망가지는 것이 싫었던 샤넬은 활동성이 뛰어난 저지 소재를 도입해 카디건 슈트를 탄생시켰다. 이는 코르셋에 갇혀 있던 여성들에게 우아한 해방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카디건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후 카디건은 1950~1960년대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며 셔츠 위에 깔끔하게 겹쳐 입는, 학교 로고가 새겨진 스타일과 함께 지성과 부유함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카디건은 단정한 모범생의 유니폼이자 기성세대 질서에 순응하는 보수적 세련미를 대변하는 프레피 룩의 대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접어들면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단추가 떨어지고 올이 풀린 축 늘어진 빈티지 카디건을 걸치고 무대에 오르면서 카디건은 그런지 룩으로 소비되며 정반대 정서를 상징하게 되었다. 프레피 룩의 카디건이 정돈된 삶을 의미했다면, 그런지 스타일의 카디건은 기성세대에 대한 냉소와 결핍을 드러내는 반항의 도구였다. 군복에서 시작해 샤넬의 우아함을 거쳐 아이비리그와 반항의 상징을 오간 것이다. 카디건의 역사는 결국 이 아이템이 지닌 포용력을 증명한다. 뉴 시즌을 준비하는 디자이너들이 여전히 카디건을 무대에 올리는 이유도 이 유연한 서사 때문이 아닐까. 거리 위에서 쉽게 마주치는 카디건 차림의 대중이야말로 카디건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는 증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