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레 데 루키의 디자인 철학
대량 생산의 논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장인과의 협업으로 또 다른 제작 방식을 실험해온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 미켈레 데 루키의 디자인 철학.

정교하게 균형을 이룬 2개의 팔, 가볍게 떠 있는 듯한 알루미늄 갓. 감각적인 스튜디오나 사무실, 혹은 잘 정돈된 서재라면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조명이 있다. 아르테미데의 ‘톨로메오(Tolomeo)’ 램프다. 1987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디자인상 콤파스 도로(Compasso d’Oro)를 수상한 이 조명은 지금도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인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그 형태를 만든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아티스트인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다.
1980년대 전위적 디자인 그룹 알키미아와 멤피스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급진적 실험을 이끈 그는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핵심 기업 올리베티(Olivetti)의 디자인 총괄을 맡아 기업 디자인 전략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후 산업디자인과 건축, 예술을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며 기술과 인간, 기능과 상상력 사이의 균형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Produzione Privata)다. 1990년 아내 시빌레 키케레르(Sibylle Kicherer)와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로, 산업 생산의 논리에서 한 발 물러나 디자인의 본질을 다시 묻는 실험이다. 전통 방식을 이어온 이탈리아 장인들과 협업해 나무·금속·유리·세라믹·돌 같은 재료로 가구와 조명, 베이스, 카펫, 액세서리 등 다양한 오브제를 소량 제작한다.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장인 기술이 만나 유일무이한 형태가 탄생하는데, 그 제작 과정 자체가 하나의 창작이 된다.
산업디자인의 아이콘을 만드는 동시에 ‘손의 지능’과 장인정신의 가치를 꾸준히 탐구하는 그에게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는 대량생산의 논리 바깥에서 디자인의 또 다른 가능성을 실험해온 중요한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기 위해 30여 년 만에 한국을 찾은 미켈레 데 루키를 서울 더쇼룸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어요. 소감이 어떤가요? 1990년대 초에도 한 번 온 적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변했더군요. 서울뿐 아니라 한국 전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 모습을 보며 인간 역시 멈춰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습니다. 저 역시 가만히 멈춰 있기보다 움직이며 일하고 사유하는 과정 속에 있을 때 더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1990년대부터 전개해온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 컬렉션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은?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는 멤피스 활동 이후 시작한 작업입니다. 멤피스가 1980년대의 강렬한 에너지를 반영했다면, 1990년대 초반은 전혀 다른 질문이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에너지 문제, 사회적 불평등, 이민,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이슈가 점점 커졌고, 저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때부터 지속가능성, 평등, 평화,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이 제 작업의 중요한 축이 됐습니다. 동시에 개인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도시와 시골을 오가면서 가족과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생각하게 됐거든요. 그런 사회적 문제의식과 개인적 필요가 쌓이며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 프로젝트가 자연스럽게 시작됐습니다.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는 장인 협업과 재료 중심의 작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한국 론칭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셨나요? 특정 작품에 주목하기보다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의 세계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다는 점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관객이 이 작업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어요. 이 프로젝트는 20~30년의 시간을 지나며 계속 변화했고, 저는 매 순간 그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오브제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모든 작품은 이탈리아 장인들이 전통적 방식으로 제작하며, 나무·금속·유리·세라믹·돌 같은 공예 전통에서 중요한 소재만을 사용합니다. 이런 재료의 본질과 장인정신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대량생산과 효율이 중심이 된 오늘날 디자인 환경에서 장인과의 협업과 소량 생산은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시나요?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는 신뢰하는 장인들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하는 형태와 품질을 지키며 소량의 제품을 만들어가는 작업입니다. 제게 이는 단순히 생산 방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디자인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의 문제에 가깝죠. 물건을 많이 파는 것보다는 그 안에 담긴 생각과 철학을 사람들에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디자인의 역할은 결국 어떤 삶의 방식과 감각을 제안하는 것이니까요.

오른쪽 뚜껑을 열고 닫으며 빛을 조절할 수 있는 조명 ‘본 뉘’.
작은 나무 오브제 ‘보스코(Bosco)’, 북아메리카 원주민 문화 속 토템을 형상화한 스툴이자 코드 행어 ‘비손테(Bisonte)’ 등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 컬렉션은 기능을 넘어선 장면이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실용성과 상상력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조율하시나요? 실용성과 상상력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늘 공존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디자인뿐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그렇죠. 옷을 입을 때도, 물건을 고를 때도 우리는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사용하니까요. 인간의 모든 선택 안에는 기능적 판단과 감각적 반응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오브제도 마찬가지예요. 형태는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그 안에서 다시 기능이 작동하죠. 그렇기에 둘 중 하나를 택하기보다는 하나의 선택 안에 공존하도록 두는 편입니다.
알키미아와 멤피스 같은 전위적 디자인 그룹에서 활동하며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실험과 에너지가 지금 작업에도 이어지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다만 저는 그것을 하나의 ‘스타일’이 아닌 ‘시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언어가 상황에 따라 어조를 달리하듯, 디자인도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니까요. 멤피스가 1980년대의 에너지를 드러낸 작업이었다면,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지속가능성과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 반영된 또 다른 표현이었어요. 저는 늘 그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응답해왔습니다.
1987년에 공개된 톨로메오 램프는 지금도 디자인 아이콘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조명을 디자인할 때 어떤 점에 가장 집중하셨나요? 톨로메오는 기능적 요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테이블 램프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분명한 미션이 있었고, 저는 세 가지 요소에 집중했습니다. 첫 번째는 관절 구조, 두 번째는 무게중심의 균형, 세 번째는 스프링을 통한 유연성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요소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중요했죠. 당시에는 스프링이 외부로 드러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그것을 보이지 않게 하면서도 기능은 유지하는 다른 해결책을 찾으려 했습니다. 톨로메오는 그 지점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올리베티에서는 기업의 디자인 전략을 이끌었는데요. 산업과 디자인이 만나는 지점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뭔가를 정확히 포착하고, 거기에서 영감받아 사람들이 삶을 더 잘 꾸려가도록 제안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늘 빛과 어둠, 긍정과 부정, 옳음과 그름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따라서 디자인도 하나의 해답만을 제시해선 안 되죠. 오히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후에 또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건축, 디자인,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해왔습니다. 세 분야는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나요?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가 이미 수많은 기술과 정보, 자극이 겹쳐 있는 환경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건축, 디자인, 예술이 각자 분리된 언어로 존재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응답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게 됩니다.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 과정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고, 다시 답을 찾고, 또 다른 질문으로 나아가는 태도입니다. 그런 훈련이 결국 창의력을 키우고,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는 힘이 되니까요.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은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반응이에요. 기능이 별로라거나, 아름답지 않다거나 하는 평가보다, 그것이 기존의 무엇과 닮았다는 말이 제게는 훨씬 더 치명적입니다. 반대로, 완전히 새롭게 느껴진다는 반응을 들을 때 가장 기쁩니다. 그렇기에 작업을 시작할 때는 ‘어떻게 하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고민합니다. 시장에서 아직 본 적 없는 것, 사람들이 보고 놀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곤 하죠. 수많은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각자 스타일이 있지만, 저는 오히려 특정한 스타일에 머물지 않는 것이 제 방식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보지 않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엄청나게 많은 것에서 영감을 받아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핵심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늘 앞으로 나아가려는 태도인 것 같아요. 저는 작업을 하나의 고정된 답으로 생각하기보다 앞으로 던져보는 행위에 가깝게 느끼곤 해요. 그렇게 전진하다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죠. 영감이 어디서 오는지 정확히 안다면 오히려 그렇게 오래 고민할 필요 없을 거예요.(웃음)
AI가 일상이 된 시대, 앞으로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시나요? 저는 손으로 만드는 장인의 세계에서 출발해 디지털 도구와 컴퓨터를 활용하는 현재까지 모두 경험한 세대라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지금 같은 기술 환경도 아니었으니까. 반면, 오늘날 젊은 세대는 AI 등 다양한 도구를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도구를 쓰는지보다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디자인은 단지 재료를 고르고 형태를 다듬는 기술적 행위일 뿐입니다. 상상력, 기능에 대한 이해, 정신적 태도, 그리고 왜 그것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문화적·서사적 맥락을 함께 담아내야죠. 디자이너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오감을 열어둔 채 세계를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요?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평화’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유럽 역시 그 긴장과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만들든, 그것이 제품이든 프로젝트든 사람들에게 조금 더 평화롭고 편안한 감각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에디터 김수진
- 사진 김제원(인물),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