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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를 담은 목소리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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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어린 목소리로 마음의 온기를 전하는 소프라노 허진아를 만났다.

연세대학교 성악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은 소프라노 허진아는 클래식을 기반으로 오페라와 뮤지컬, 크로스오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에서 관객과 교감하는 아티스트다. 그는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오페라단을 거쳐 2013년 서울시합창단에 입단한 뒤 13년간 솔로와 앙상블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꾸준히 확장해왔다. 동시에 공공 예술단 일원으로서 이어온 나눔의 자리 역시 그의 예술적 여정을 넘어 삶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허진아가 처음 품은 꿈은 성악가보다는 가수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감수성이 남달랐던 그는 발라드와 팝을 즐겨 들으며 조용히 무대에 대한 꿈을 키웠다. 부모님의 권유로 성악을 시작했지만, 초등학교 합창단 솔로 오디션에 도전하며 느낀 설렘과 긴장은 그가 소프라노의 길을 걷게 한 또 다른 원동력이었다. 그러면서도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 등의 노래를 가까이하던 시간은 단순한 취미나 일탈에 머물지 않고, 훗날 다양한 장르를 자연스럽게 품게 한 음악적 토양으로 남았다. “제가 초등학생 때 영화 <보디가드>를 보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대요. 당황한 엄마가 왜 우느냐고 물으니,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랬다고 대답했다더군요. 시간이 흘러 예고에 진학한 뒤에도 클래식만큼 팝을 좋아했는데, 그런 시간이 지금까지 제 활동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듯해요.”
팝을 통해 음악 세계에 매혹되었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린 것은 결국 클래식이었다. 2009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울시오페라단 단원으로 발탁되었고, 수많은 오페라 스코어를 몸으로 익히며 음악적 밀도를 쌓았다. 젊은 성악가에게 주어진 이례적인 시간은 클래식의 세계를 깊이 체득하게 했지만, 준비하던 해외 유학이 좌절되면서 한때 그 세계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도 찾아왔다. 그런 심정으로 도전한 뮤지컬은 역설적으로 클래식을 향한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 계기가 됐다. “사실 긍정적인 마음만으로 뮤지컬에 도전한 건 아니었어요. 어떻게 보면 성악으로부터의 도피였달까요. 당시에는 국내 클래식 신에서 실력도 중요하지만, 유학 경험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거든요. 솔리스트로서 자존심도 지키고 싶었고요.”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 한국 초연 무대 역시 클래식과 완전히 결별한 선택은 아니었다. 작품 전반에 모차르트 음악이 깔려 있었고, 그가 맡은 역할 또한 모차르트의 뮤즈였던 성악가였기 때문이다. 낯선 장르의 무대 위에서 그는 오히려 내면에 남아 있던 클래식을 향한 애정과 갈증을 더욱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결국 그를 서울시합창단 오디션으로 이끌었다. “클래식은 몇백 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잖아요. 그 변치 않는 힘이 결국 제가 클래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제 성향상 무언가를 반복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인데, 클래식은 유일하게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계속 듣고 부를 수 있거든요.”
허진아는 시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서울시합창단의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위로받는 순간을 마주한다고 말한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곳을 찾아가 공연할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언젠가 교도소의 작은 방에서 혼자 ‘넬라 판타지아’를 부르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요. 처음에는 경직된 분위기였지만, 노래가 끝날 무렵 재소자분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볼 수 있었죠. 그 순간, 음악이 지닌 고유한 울림을 다시 한번 실감했어요.”
실제로 소프라노 허진아의 강점은 맑은 음색과 안정적 테크닉을 넘어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마음을 실어 건네는 그의 다정하고 온기 어린 노래에는 삶의 결을 통과한 위로가 배어 있다. 그 감정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기량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그는 하나의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테크닉을 치열하게 다듬고, 무대 위에서는 말과 정서의 온도를 섬세하게 길어 올린다. “누군가 제게 ‘지금까지 들은 소프라노의 소리 중 가장 다정하고 정감 있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어요. 제가 노래를 통해 전하고 싶은 온기를 알아봐주신 것 같아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더군요.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제 노래가 꼭 필요한 순간에 위로로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겐 큰 의미가 됩니다.”
최근 허진아의 행보는 보다 적극적이다. 5월 말 공개하는 KBS1 프로그램 출연에 이어 음반 발매에 관한 논의까지 차근히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음악의 의미를 묻자, 그는 매일의 삶에 영양을 불어넣는 ‘밥’ 같은 존재라고 답했다. 소프라노 허진아에게 노래란 변함없이 자신을 지탱하면서도 타인의 내면까지 조용히 채워주는 든든한 원천인 셈이다. “늘 스스로 부족하다는 마음에 오랜 시간 저 자신을 조금 숨기며 지내온 것 같아요. 그동안 여러 제안을 고사해왔는데, 올해 들어 유독 목소리라는 것이 무한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죽는 날까지 모두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어떤 완벽한 결과물을 내려고 하기보다 앞으로 저 자신을 조금 더 다독이며 나아가보려고요.”

  • 에디터 손지수
  • 사진 안지섭
  • 헤어 안혜수
  • 메이크업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