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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리고 패션 하우스

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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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하우스가 스크린의 문법에 매료됐다.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전하는 또 하나의 창조적 비전이 예술적 가치를 확장한다.

시대가 변했다. 21세기 영화는 존재 자체로 패션을 대변한다. 영화 속 캐릭터의 일부로 패션을 활용하던 지난날과는 다르다. 스토리텔링, 아트 디렉션, 스타일을 조합한 필름은 그 어떤 영화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는 스타일과 스토리텔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하나의 이야기로 기록한다. 수많은 하우스 브랜드가 스크린의 문법에 매료되는 이유다. 지금 하우스 브랜드는 단순히 옷을 팔기 위한 전략을 넘어 스타일에 입체적 세계관과 캐릭터를 입히는 감성적 경험을 택한다. 후원을 통해 영화의 서사와 우아한 연대를 형성하는 샤넬, 영화 제작사를 출범해 창작 범위를 확장한 생 로랑,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여성성을 다양하게 관찰하는 미우미우, 런웨이를 드라마로 대체한 스토리텔러 구찌 등 패션 하우스 브랜드가 영화라는 이야기에 뛰어드는 방식도 다양하다. 감독의 예술적 비전을 통해 공유하는 하우스의 철학은 예술적 시선으로 봐도, 패션적 잣대를 들이밀어도 흠잡을 데가 없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프리실라>, 2024년. © IMDB
샤넬의 지원으로 레노베이션을 거쳐 새롭게 문을 연 프랑스 누벨바그의 전설적 영화관 생제르맹데프레.
샤넬의 지원으로 레노베이션을 거쳐 새롭게 문을 연 프랑스 누벨바그의 전설적 영화관 생제르맹데프레.

CHANEL

샤넬은 오랜 시간 영화 산업을 다방면으로 후원해왔다. 방식 또한 다양하다. 소피아 코폴라 등 거장의 작품 세계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서포터가 되어주는 것은 물론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글로벌 영화 커뮤니티와 결속을 다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끄는 멘토십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 공동체의 발전을 지원한다. 최근에는 파리 생제르맹데프레 극장의 파트너를 자처하며 시네마 인프라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전방위적 행보는 마케팅이나 자금 지원의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는 영화라는 장르가 지닌 서사적 힘을 빌려 관객에게 브랜드의 정체성과 문화를 온전히 체화하겠다는 경험의 전략에 가깝다. 스크린의 문법이 지닌 영속성에 매료된 샤넬은 영화가 상영되는 한 하우스의 가치 역시 영원히 기록된다는 시네마의 속성을 영리하게 꿰뚫고 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 2024년.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 2024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스트레인지 웨이 오브 라이프>, 2023년.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파르테노페>, 2024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더 슈라우드>, 2024년.

SAINT LAURENT

생 로랑의 행보는 과감하면서도 주도적이다. 안토니 바카렐로는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덕션을 출범해 2023년 정식 필름 프로덕션을 보유한 첫 번째 패션 하우스로 거듭났다. 출범과 동시에 방향성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단편영화 ,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로 예행 연습을 마친 생 로랑은 이듬해 세 편의 장편영화를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렸다. 이후 2025년 제82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한 짐 자무시 감독의 는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생 로랑의 행보가 흥미로운 지점은 안토니 바카렐로가 제작자이자 예술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며 거장들의 예술적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생 로랑은 단순히 의상 협찬이나 자금 지원 수준의 파트너십이 아닌 영화의 본질을 가장 깊이 있게 탐구하는 창작 주체로서 역할을 자처한다.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 프로젝트의 31번째 작품 .
노르웨이 출신 모나 패스트볼드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여성이 느끼는 사적인 세계 속 자아와 공적인 세계 속 모습의 간극을 표현했다.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 프로젝트의 31번째 작품 .
노르웨이 출신 모나 패스트볼드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여성이 느끼는 사적인 세계 속 자아와 공적인 세계 속 모습의 간극을 표현했다.

MIU MIU

여성 감독이 자유로운 이야기를 이어가고, 다양한 시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창작자에게 온전한 해석의 권한을 부여하는 미우미우의 ‘우먼스 테일’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2011년부터 진행해온 이 프로젝트는 조이 카사베티스, 에이바 듀버네이, 클로에 세비니 등 세계 각지의 쟁쟁한 감독이 참여해 각자의 미학으로 발자취를 남겼다. 미우미우는 감독들에게 21세기의 여성성을 비판적 시선으로 조명하면서도, 완전한 창작의 자유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을 요청한다. 이는 미우치아 프라다가 30년 넘게 미우미우를 통해 탐구해온 여성성과 끊임없는 실험 정신의 연장선에 있다. ‘우먼스 테일’은 현 세대 속 여성의 새롭고 강인한 역할을 창조하고, 포스트-시네마 시대에 관객이 다시금 영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내포한다.

구찌의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가 첫 번째 런웨이로 선택한 단편영화 <더 타이거>, 2025년. @gucci
구찌의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가 첫 번째 런웨이로 선택한 단편영화 <더 타이거>, 2025년. @gucci

GUCCI

벌써 1년이 지났지만, 구찌의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가 취한 데뷔 무대는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것이다.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한 전략으로 택한 30분짜리 단편영화 는 브랜드를 이적한 뒤 그의 심경과 구찌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방향성을 대변했다. 런웨이가 드라마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한 셈이다. 이후로도 뎀나는 서사가 담긴 필름을 통해 예술적 비전을 공유한다.

  • 에디터 최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