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무대가 되는 계절
올가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다양한 성격의 공연 예술제가 잇따라 막을 올린다. 연극과 무용, 음악, 퍼포먼스 등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도시’라는 무대로 옮겨오는 세계적 공연 예술제를 소개한다.

한 해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공연 예술 작품 중 보석 같은 명작을 고르고 싶다면, 가을에 집중된 전 세계 공연 예술 축제로 눈을 돌려보자. 세계적 연출가와 극작가, 안무가, 댄서, 뮤지션, 미술가들이 연합해 가장 자유로운 예술적 발언을 쏟아내는 무대가 마련되기 때문. 평소 만나기 어려운 대규모 작품과 화제작, 초연작을 한 도시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도 공연 예술 축제의 매력이다.
9월 11일부터 12월 19일까지 파리에서 열리는 ‘파리 가을 축제(Festival d’Automne a Paris)’는 동시대 공연 예술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1972년, 다원적 예술 축제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이후 새로운 예술 언어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반세기 넘게 현대 공연 예술사의 새 역사를 써왔다. ‘올해의 가장 유명한 공연’과 ‘예술가’를 초청하기보다 작품 제작을 적극 지원하며, 매년 프로그램의 약 60%를 창작 작품으로 선보이는 것이 이 축제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독특한 것은, 3개월이 넘는 축제 기간에 정해진 전용 공연장 없이 70여 개 프로젝트가 파리의 60여 개 문화 기관에서 열린다는 것. 특히 올해는 2026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대표 작가 루바이나 히미드가 마그다 스타바르스카와 함께 살페트리에르의 생루이 예배당에서 대규모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을 선보이며, 크리스틴 선 킴이 파리 지하철과 거리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퍼포먼스 ‘Community Sigh’를 이어간다. 미세하게 다른 음으로 조율된 50대의 피아노와 실내악 앙상블로 ‘소리의 우주’를 선보이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하스의 ‘11000 Strings(11000 Cordes)’도 눈여겨볼 만하다.

런던에서도 10월 7일부터 27일까지 주목할 만한 공연 예술 축제가 열린다. 하나의 우산 아래 ‘무용’이라는 장르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댄스 엄브렐라(Dance Umbrella)’다. 이 역시 ‘다음 세대의 안무가’에게 투자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머스 커닝엄, 트리샤 브라운, 시오반 데이비스, 로즈메리 부처 등 20세기 후반 현대무용사의 주요 인물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올해는 예술감독 프레디 오포쿠 아다이에의 큐레이션으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안무가들이 몸과 기억, 공동체와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펼쳐 보인다. 특히 2026 베니스 비엔날레 무용 부문 은사자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안무가 마멜라 니암자가 신작 〈The Herd/Less〉를 영국 초연하며, 레바논 안무가 오마르 라제가 바비칸 센터에서 자신의 삶과 기억을 투영한 1인 퍼포먼스 ‘Dance is Not for Us’를 선보이는 등 춤을 개인적 회고이자 정치적 행위로 확장한다.

로마에서는 올해 41회를 맞은 공연 예술 축제 ‘로마유로파 페스티벌(Romaeuropa Festival)’이 9월 8일부터 11월 15일까지 이어지는데, ‘과거’에 갇힌 듯한 로마의 색다른 면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축제다. 로마 오페라극장과 테아트로 아르젠티나가 동시대 무용과 연극의 무대로 사용되고, 과거 도축장이던 문화 공간 마타토이오, 빌라 메디치 등 상징적 문화유산 역시 실험적 예술의 장으로 변모한다. 올해는 프랑스의 아티스트 컬렉티브 라 오르드가 이끄는 마르세유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프로덕션 ‘Apres moi, le deluge’를 비롯해 전설적 안무가 자샤 발츠가 오랜만에 무용수로 복귀해 첼리스트 아나스타샤 코베키나와 함께하는 〈Bach Cello Dance〉 등이 큰 기대를 모은다.


일본 교토에서는 현대 공연 예술제 ‘교토 익스페리먼트(Kyoto Experiment)’가 10월 3일부터 25일까지 도시 곳곳을 무대로 펼쳐진다. ‘실험’이라는 이름처럼 이들은 ‘일본과 해외의 선구적이고 실험적 아티스트’를 초청해 연극과 무용, 음악, 미술이 넘나드는 작업을 소개하고 교류한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포켓 속 조약돌(Carrying a pebble in my pocket)’로, 전쟁과 갈등, 분열로 타인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공연 예술의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현 아비뇽 페스티벌 디렉터이자 연출가 티아구 로드리게스의 대표작 ‘By Heart’가 로옴 시어터 교토에서 일본 초연되며,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과 교토 익스페리먼트가 공동 큐레이션해 한국 작가 김강연, 이민진, 박민희의 퍼포먼스 3개를 쇼케이스 형식으로 무대에 올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 예술 축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역시 10월 8일부터 25일까지 18일간 국립극장,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대학로극장 쿼드 등 다양한 무대에서 이어진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연극·무용·다원예술을 아우르는 세계의 동시대 공연 예술을 한국에 소개하는 동시에 글로벌 무대에 선보일 국내 작품을 지원하며, ‘현대 공연 예술’의 양방향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왔다. 올해의 주제는 ‘예술의 다중우주(Multiverse of Art)’로, 서로 다른 문화와 기억, 감각이 교차하는 작품을 통해 동시대 예술의 다양한 시선을 소개할 예정이다. 올해의 가장 큰 기대작은 지난 7월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낭독 퍼포먼스 ‘새(Oiseau)’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장 ‘새’를 바탕으로 쥘리 들리케의 연출 아래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두 언어로 텍스트를 낭독한다. SPAF 협력 예술가 박본이 극작과 연출을 맡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SPAF가 공동 제작한 오페라극 〈세 번째 전쟁〉, 2025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베니스 이머시브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XR 몰입형 연극 〈블러: 경계가 흐려질 때〉 등도 예술적 감각의 지평을 한층 넓혀줄 작품으로 기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