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Paths to Form
재료는 어떤 이에게는 시작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끝없는 질문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감각을 지닌 창작자 7인에게 물었다. 그들에게 재료란 무엇이며, 어떤 언어로 존재하는가?
사유하는 움직임 김재덕
김재덕은 안무가로 현대무용단 ‘모던테이블’을 창단해 이끌고 있다. 직접 음악과 안무를 창작한 대표작 〈다크니스 품바〉를 비롯해 〈일무〉, 〈속도〉 등 다수의 작품을 국내외에 선보였으며 싱가포르 T.H.E. 댄스 컴퍼니의 해외 상임 안무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작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재료로는 내가 창안한 두 번째 춤의 메소드 ‘다잉트리(Dying Tree)’가 있다. 느린 움직임을 중심으로 한 이 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갈 무렵 홍콩 현대무용단의 안무 의뢰를 받고 격리 중이던 호텔 방 안에서 시작되었다. 제한된 공간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느린 호흡과 움직임이 하나의 춤 언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잉트리는 단순한 안무 기법이 아니라, 몸에서 비롯한 즉흥적 에너지와 철학적 사유가 만나는 신체적 언어다. 그 안에는 좌우세(Left & Right), 추미, 피어남과 시듦, 매란국죽, 태극, 기류, 파도, 구름 같은 세분화된 동작 재료가 존재하며, 나는 각 작업에서 이를 음악과 공간에 맞춰 다른 뉘앙스로 변주한다. 하나의 동작이 거울 앞에서 태어나 이름을 얻고, 그 이름이 다시 문장이 되는 과정은 마치 나만의 언어를 만드는 일과 같다. 메소드는 하나의 살아 있는 언어로 자유롭게 결합하며 ‘중용’의 개념을 구현한다. 그렇게 몸과 사유 그리고 무대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삶 속에 펼쳐지는 예술적 순간이 완성된다.
공간의 고유한 흔적 조윤경 · 송승원
인테그(INTG.) 공동 대표 송승원·조윤경은 뉴욕 컬럼비아 대학원 출신 부부 건축가로 국내외 브랜드,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건축, 공간 프로젝트를 완성하며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독창적 내러티브 중심의 디자인 콘셉트를 다양한 재료를 조화롭게 활용해 풀어내며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
공간을 구축하는 우리는 건축과 공간마다 정체성을 찾고, 그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무엇보다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경험이 쌓이는 공간을 지향하기에 각 프로젝트에 맞는 재료를 발견하고, 그 내러티브와 잠재력을 탐구하는 데 집중한다. 공간에서 재료는 형태의 도구를 넘어 고유의 이야기를 전하는 언어가 된다. 콘크리트, 금속, 목재처럼 구조적 특성과 물성을 지닌 재료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다. 각 재료의 밀도와 질감, 온도, 빛을 받는 방식은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고, 시간의 흔적을 품은 재료는 그 고유한 이야기를 통해 공간의 사용자와 교감한다. 이를 위해 먼저 재료의 구조적 특성과 표면 질감이 지닌 가능성을 파악한 후 공간과 새롭게 엮어낸다. 화이트큐브 서울에서는 순백의 전시 공간 개념을 확장하며 수묵의 매트함을 지닌 다양한 재질로 한국의 정서를 더했고, 파운드리 서울은 금속의 텍스처와 마감재 간 긴장감을, 라이즈 호텔은 캐스팅 방식마다 다른 콘크리트의 질감을 각 층에 구현했다. 이렇게 재료와 공간이 서로 감응할 때, 편안하면서도 오래도록 영감을 주는 공간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양극을 오가는 메신저 양유완
호주에서 유리공예를 전공한 후, 브랜드 모와니 글라스(Mowani Glass)를 운영 중인 작가 양유완. 유리에 다양한 소재를 접목해 한국적 미감과 실용성을 갖춘 오브제를 선보이며, 비정형적 형태와 재료의 융합을 통해 유리공예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나에게 재료는 메시지다. 작업을 통해 전하고 싶은 감정과 이야기를 담고, 그것을 매개로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주된 재료는 유리지만, 다른 재료를 어떻게 융합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과정에서 전해지는 서사와 완성된 형태의 의미가 달라진다. 금속, 나무, 자연물, 옻칠이나 수금칠 같은 공예적 기법을 함께 사용하며, 각 재료가 가진 이미지로 작업의 뉘앙스를 조율한다. 특히 유리는 투명과 불투명, 동양과 서양, 정형과 비정형, 클래식과 모던 등 상반되는 개념이 만나는 재료다. 나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나만의 소리를 전한다. 그래서 작업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계산된 결과보다 실수나 오차가 만들어낸 예기치 못한 순간이 더 큰 즐거움을 준다. 머릿속 스케치와 다른 결과가 만들어내는 그 불일치의 찰나가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다. 결국 내게 중요한 것은 다양한 해석이 오가는 ‘교류’다. 내가 전하는 스토리텔링이 다른 이에게 어떤 공감과 해석으로 되돌아오는지, 그 과정 자체가 대화이자 또 다른 메시지가 된다.
순환의 가치 김도형
바 제스트(Zest)의 오너 바텐더 김도형. 그가 이끄는 제스트는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두 해 연속 ‘아시아 50 베스트 바’ 2위에 올랐으며 한국 칵테일 바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곳이다. 모든 재료를 끝까지 활용하는 제로 웨이스트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고 있다.
바텐더로서 매일 술, 과일, 허브 등 수많은 재료를 다루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당연하게 버려지는 것들’이다. 바 이름 ‘제스트’는 본래 요리나 음료에 향미를 더하는 시트러스 과일의 껍질을 뜻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한 가지 가치를 더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의 약어로 사용하고 있다. 바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캔과 플라스틱병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 토닉워터, 콜라, 소다워터 등 모든 탄산음료를 직접 제조하고 매주 농장을 방문해 허브를 재배함으로써 생산자와의 직접적 연계, 유통 과정의 생략, 포장재 배출의 최소화를 실현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재료를 해석하고 다시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이자 가치로 전달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재료를 다루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문화는 함께하는 업계 종사자, 생산자 그리고 손님에게 전해지며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그렇게 생겨난 작은 변화의 흐름이 모여 언젠가는 세상을 바꾸는 문화적 힘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믿고 있다.
시간의 흔적 양태오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실내 건축을, 캘리포니아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에서 환경디자인을 공부한 디자이너 양태오는 네덜란드의 마르셀 반더스 스튜디오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2011년 서울 북촌에 태오양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국립경주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국제갤러리 등 다양한 공간 프로젝트를 디렉팅하며 전통의 아름다움을 동시대적으로 표현하는 데 힘쓰고 있다.
내 작업의 중심에는 자연 소재, 특히 나무와 돌이 있다. 하지만 사용하는 것은 새것이 아니라 시간과 흔적이 스며 있는 재료다. 오래전 마을 어귀에 놓여 있던 돌이나 농기구의 일부로 쓰이던 돌을 다시 공간으로 들여와 인간과 땅 그리고 자연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허물어진 한옥의 기둥을 새로운 건축에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과거의 구조와 현재의 공간을 잇고 전통 건축에 담긴 자연관을 오늘의 감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나에게 재료는 형태를 만드는 물질이 아니라 공간의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다. 그 속에는 시간의 층위와 인간의 태도가 함께 존재하고, 깊이 들여다볼수록 더 큰 우주가 있다고 믿는다. 디자인의 목적이 단순히 아름다움이 아니라 태도와 정신을 전달하는 거라면 재료는 문장을 이루는 어휘와 같다. 그래서 공간의 소재를 선택할 때는 언제나 신중하다. 나무와 돌은 오랜 세월 다뤄온 재료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물질이다. 나는 그 안에서 시간의 흐름과 자연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태도를 본다. 모든 재료는 유한하다는 생각으로 다루고 낭비하지 않기 위해 한 조각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한다.
살아 있는 것의 힘 조셉 리저우드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에빗(Evett)의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Joseph Lidgerwood). 호주 출신으로 미국 나파의 프렌치 런드리와 영국 레드버리 등 세계 유수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 유럽과 아시아 여러 국가의 주방을 거친 뒤 한국에 정착해 전통 식재료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내 작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한국의 발효 식재료다. 간장과 된장을 비롯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숙성되거나 변화한 재료. 이들은 단순한 조리 요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에 가깝다. 주변 환경에 따라 미세하게 반응하고 숨 쉬며 이를 만든 사람들과 풍경, 계절의 기억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전통 발효의 세계를 만나고, 그 안에 깃든 인내와 기다림의 철학을 발견했다. 발효는 단순히 맛을 내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과 문화,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식재료와 함께 작업하는 과정은 호주 출신인 나의 배경과 한국적 유산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오랜 시간을 품은 맛을 통해 셰프로서 정체성을 표현한다. 호기심과 절제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과정을 존중하는 태도. 살아 있는 식재료가 지닌 힘은 완성된 결과보다 그 시간을 견디는 과정 속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향을 만드는 언어 줄리안 베델
줄리안 베델(Julian Bedel)은 아르헨티나 출신 향수 디자이너이자 니치 퍼퓸 브랜드 ‘푸에기아 1833’의 창립자다. 그는 자신이 성장한 파타고니아 지역의 희귀 식물과 허브를 직접 채집하고 연구해 향료를 만들며 그 과정에 남미의 자연과 문화에 대한 경의를 담는다.
향을 만들기 위해 진행하는 식물학 연구와 현장 탐사 그리고 최적의 기술을 찾는 과정은 완성된 향수보다 매력적이다. 한 병의 향수가 누군가의 손에 닿기까지, 그 이면에는 수년의 연구와 수많은 시행착오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푸에기아는 향수를 만드는 곳이자 식물을 탐구하는 실험실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실패하고 또 도전하며 원하는 표현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우리의 재료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에디션’ 형식으로 작업한다. 어느 해에는 놀라운 재료를 얻지만, 다음 해에는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도 식물의 상태와 환경,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매번 재료를 다시 만나고 배우고 해석해야 하는 과정이 이 작업의 매력이자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나는 언제나 최선의 길을 찾고 그 길을 의심하며 또다시 시도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런 태도가 지금의 푸에기아를 만들었으며 나를 예술가로 정의하게 했다. 재료의 물성은 푸에기아의 정체성이며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