젱크스의 우주, 코스믹 하우스
한 채의 집이 사유의 세계가 될 수 있다면, 그 안에는 어떤 우주가 펼쳐질까? 런던의 일상 한가운데에서 상상을 현실로 옮긴, 찰스 젱크스의 ‘코스믹 하우스’. 동시대 예술과 건축을 잇는 런던의 문화 거점으로 조용히 부상 중이다.

런던 홀랜드파크 지하철역에서 나와 동네를 걷다 보면, 고요한 신비를 머금은 흰색 집이 나타난다. 이곳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이자 미국의 건축 이론가 그리고 디자이너이기도 한 찰스 젱크스(Charles Jencks)가 1978년부터 5년간 부인 매기, 영국 건축가 테리 패럴과 협력해 일궈낸 일생일대의 역작 ‘코스믹 하우스(Cosmic House)’로, 이름 그대로 젱크스의 ‘우주’가 담겨 있다. 이성과 합리를 외치던 모더니즘 건축의 끝을 선언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활약한 젱크스의 코스믹 하우스. 정제된 초기 빅토리아 건축양식의 백색 외관과 달리 그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무수한 색과 기하학적 형태를 폭죽처럼 터뜨리며 방문객을 환대한다. 그 근간에는 ‘문명’과 ‘우주’라는 시간적 개념이 자리하는데, 입구 천장에서 모두를 내려다보는 ‘코스믹 오벌(Cosmic Oval)’은 집 전체를 관장하는 이 두 가지 흐름을 예고하는 듯하다. 젱크스가 생전에 가족과 함께 실제로 거주한 이 집은 시각 유희, 말장난, 기호학 그리고 각종 가구와 아카이브 성격을 띠는 자료들까지, 여러 겹의 장식을 걸치고 있다. 마치 젱크스 부부의 거대한 ‘뇌’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이 총체적이고 예술적인 공간의 1층에는 봄, 여름, 인디언 서머, 가을 그리고 겨울을 상징하는 5개의 방이 차례로 자리한다. 각각의 방에는 사계절에 어울리는 색감의 가구와 기발한 장식이 가미되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삶’이라는 긴 여정을 흐르는 계절에 비유하곤 하는데, 젱크스는 자신이 창조한 사적 우주 안에서 사계절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하 하디드, 노먼 포스터, 렘 콜하스 같은 저명한 절친을 곁에 둔 젱크스 덕에 진중한 문화적 담론이 오가는 살롱처럼 운영되기도 한 코스믹 하우스. 그럼에도 ‘픽!’ 하고 웃음짓게 하는 유쾌함과 키치함을 잃지 않은 데에는, 끝없는 언어유희와 시각적 상징이 큰 몫을 한다. 1층의 ‘겨울’ 방 벽난로 앞에는 그곳에 응당 있어야 할, 그래서 온기를 더해야 할 불꽃 모양을 연상시키는 중국의 공석(供石)들이 묵직하게 세워져 있다. 물론 불은 실재하지 않는다. 이어 ‘충분히 상징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콜하스의 디자인을 거절하고 마이클 그레이브스에게 맡긴 ‘봄’ 방에서는 봄을 구성하는 석 달(4~6월)과 목성의 발전 과정 세 단계를 의미하는 흉상 3개가 방문객들을 내려다본다. 앞서 언급한 코스믹 오벌의 형태는 입구에서 모두에게 위엄 있는 첫인상을 심어주지만, 바로 옆 화장실 변기에 재등장하며 ‘코스믹 루(cosmic loo)’라는 가벼운 농담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키치함을 견딜 수 없다면, 키친에서 나가라”라는 말을 남기기도 한 젱크스의 부엌은 ‘여름’ 다이닝 룸과 ‘가을’ 다용도실 사이에 위치한다. 늦가을 중 여름 같은 날씨를 의미하는 ‘인디언 서머’를 테마로 꾸몄는데,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힌두 사원을 연상시키는 MDF 수납장을 설치해 ‘인디언’적 요소를 가미하기도 했다. 이 집에서 무의미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라 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중앙 계단에도 젱크스를 매료시킨 우주적 · 과학적 면모가 가득하다. ‘솔라 스테어(Solar Stair)’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계단의 나선형 구조는 DNA의 이중나선, 우주와 시간의 나선을 상징하는 동시에, 계단을 구성하는 52개 칸은 1년 52주를 상징한다. 그 때문에 자세히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주수가 적힌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건축가 패럴이 그린 스케치를 보면 난간의 디자인 역시 태양계를 시각화한 것으로 지구, 달, 행성 등을 상징하며 계단과 어우러져 집 안에 우주를 들여온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으로 건축학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8년, 1등급(Grade I) 건축물로 지정된 코스믹 하우스에 대한 젱크스의 계획은 끝까지 남달랐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딸 릴리와 함께 자신의 집을 대중에게 온전히 개방할 순간을 준비하며 지하 공간을 확장하고, 야외 공간을 미니 시어터로 탈바꿈시켰다. 그렇게 2021년 공식적으로 문을 연 코스믹 하우스는 지금껏 작가 레지던시와 기획 전시, 출판 프로젝트 등을 꾸준히 이어오며 젱크스가 남긴 포스트모더니즘 유산을 현재진행형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