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완성된 쿠튀르
2026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 런웨이에서 마주한 일곱 번의 극적인 순간.
DIOR
조나단 앤더슨은 첫 오트 쿠튀르 쇼 베뉴로 뮤지엄 로댕을 선택했다. 천장에서 흙과 꽃이 떨어지는 착시, 전면 거울, 고요한 공간이 어우러진 무대에서 그는 오트 쿠튀르를 역사적 유산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고 적응하는 살아 있는 예술 현상으로 정의했다. 크리스찬 디올이 사랑했던 정원은 현대적·해부학적 시선으로 재해석돼 화려한 꽃잎 대신 식물의 줄기와 뿌리, 현미경으로 본 세포 구조가 룩 위에 반영되었다. 패션 위크 종료 후 뮤지엄 로댕에서는 아이들이 컬렉션을 직접 보고 체험하도록 공간을 구성해 오트 쿠튀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이 탄생했다. 조나단은 “오트 쿠튀르는 살아 숨 쉬는 예술이자 실천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는 지식”이라며 패션과 교육, 역사와 실험이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를 선보였다.
ROBERT WUN
로버트 운은 브랜드 설립 10주년을 맞아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공개했다. 객석과 무대 구조를 활용한 동선, 어둠과 빛을 극적으로 조율한 조명, 변화하는 대형 스크린 영상은 컬렉션의 감정선을 확장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룩은 날카로운 테일러링과 과장된 볼륨, 조형적 실루엣으로 매 순간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쇼가 진행될수록 배경과 조명은 무게감을 더하고, 실루엣과 소재는 견고함을 강조하며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이는 지난 10년간 쌓아온 기술과 미학의 정수이자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미래 방향을 암시하는 전개였다. 로버트 운은 이번 쇼를 “지난 10년간 구축한 세계관을 시노그래피로 완성한 연극적 선언”이라고 정의하며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관객이 경험하는 예술의 장으로 확장했다.

STÉPHANE ROLLAND
파리 부글리옹 서커스의 원형 무대에서 진행된 스테판 롤랑의 오트 쿠튀르 쇼는 사회적 메시지와 예술적 실험을 동시에 담았다. 이번 컬렉션은 프랑스 병원 재단을 위한 자선 패션쇼로 기획되었으며, 티켓 판매 수익금은 전액 기부되었다. 롤랑은 이를 “원형의 의식”이라 설명했다. 모델들은 원형 무대를 따라 걸으며 옷과 공간의 관계를 완성했으며, 움직임과 실루엣, 감정의 잔상을 남겼다. 룩은 구조적 테일러링과 조형적 드레이핑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견고한 볼륨과 유연한 라인이 공존하는 드레스는 움직임을 통해 완성되는 형태로 존재했다. 후반부에는 화이트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무중력에 가까운 순간에도 구조와 가벼움이 극적 균형을 이루며 컬렉션의 상징적 클라이맥스를 담아냈다.

MISS SOHEE
미스 소희는 파리 샹그릴라 호텔에서 한국의 정원을 현대 쿠튀르로 해석한 쇼를 선보였다. 코르셋과 한복에서 영감받은 구조적 레이어링과 한국에서 마주한 등나무와 대나무, 계절의 변화를 드레스에 구현했다. 오프닝 룩은 자개 트리밍 블랙 드레스로 나전칠기에서 착안한 수천 개 자개 조각이 인체 곡선에 맞춰 정밀하게 이어졌다. 이어 등장한 화이트 깃털 드레스는 공작새에서 착안한 수만 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조립되듯 수놓인 브라이덜 피스로 완성됐다. 박소희는 “육체가 기억과 풍경, 상징의 그릇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하며 오트 쿠튀르를 장인정신과 예술이 결합한 완전체로 제시했다. 한국의 전통 미학을 세계적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CHANEL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 오트 쿠튀르 데뷔 쇼는 ‘덧없음의 미학’을 테마로 그랑 팔레를 마법의 숲으로 변모시켰다. 일본 작가 미상의 정형시 ‘버섯 위 새. 찰나의 아름다움. 날아가버렸네’에서 영감받아 연분홍 바닥 위 대형 버섯과 버드나무를 설치하고 나선형 런웨이를 숲속 오솔길처럼 꾸며 컬렉션의 시적 정서를 극대화했다. 버섯이라는 상징을 통해 전통을 해체하고 다시 세우려는 창조적 태도를 드러낸 것. 피날레에서는 모델들이 숲속의 새 떼처럼 잠시 모였다 흩어지며 찰나의 아름다움 속 덧없음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순간은 오히려 샤넬의 생명력을 새롭게 꿈틀거리게 했다. 마티유는 “가볍고 시적이며 쉽게 이해되는 무언가를 원했다”며 “이번 컬렉션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신선한 공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VALENTINO
발렌티노 쇼는 지난 1월 타계한 창립자 발렌티노 가라바니를 기리는 오마주였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그의 유산을 맥시멀리즘으로 재해석하며 ‘스페쿨라 문디(Specula Mundi, 세상의 거울)’라는 테마로 쇼를 선보였다. 관객은 12개의 원형 목재 부스를 따라 좁은 창으로 모델을 관찰하며 정보 과잉 시대에 잊힌 응시의 경험을 체감했다. 룩은 1900년대 초 플래퍼 드레스, 테일러링 슈트, 글래머 가운 등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재구성해 상상 속 귀족의 모습을 구현했다. 미켈레는 “오트 쿠튀르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꿈이며,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라고 강조하며 컬렉션에 담긴 야심과 비전을 드러냈다.

VIKTOR & ROLF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노렌의 이번 쇼는 연(kite)을 모티브로 비행과 해방, 중력으로부터의 이탈을 시각화했다. 15개 룩은 모두 블랙 실루엣으로 구성되었으며, 네온 컬러와의 극적인 대비, 구조적 테크닉, 정교한 마감 디테일 등을 통해 하우스의 장인정신을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쇼의 하이라이트는 공중에 떠 있는 장치 위에서 모델과 디자이너가 함께 피스를 이동시키는 퍼포먼스였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케이트 부시의 이미지에서 영감받은 이 장면은 현실에서 상상으로 이동하는 순간을 포착하며 오트 쿠튀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지점을 설명했다. 빅터앤롤프는 “옷이 몸에 붙지 않아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하며 런웨이를 상상력을 더한 실험실로 재정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