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여전히 할 수 있는 일
2026 국제 입센상 수상자로 선정된 구자하 작가가 말하는 연극의 가능성, 공존의 공간,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함께 바라봐야 할 질문들.

‘연극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국제 입센상에서 올해 아시아인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 수상자로 선정된 구자하 작가. 현재 벨기에 겐트를 기반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그는 음악, 영상, 로보틱 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언어와 역사, 정체성, 소속 문제를 탐구해왔다. <롤링 앤 롤링〉(2015), 〈쿠쿠〉(2017), 〈한국 연극의 역사〉(2020)로 구성된 ‘하마르티아 3부작’을 비롯해 〈하리보 김치〉(2024)에 이르는 그의 작품은 경쟁 사회와 경제 위기, 언어적 식민성, 문화적 정체성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출발해 그 특수성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보편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연극 창작자, 작곡가, 비디오 아티스트 등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지만, 구자하는 스스로를 특정 장르나 매체로 규정하기보다 여러 예술 언어를 아우르는 동시대 공연 예술 작가로 소개한다. 이는 작품이 필요로 하는 언어를 찾아가는 창작 방식으로, 그에게는 어떤 물음을 던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떤 예술적 언어로 말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늘 중심보다는 경계에, 명징한 답보다는 모순과 불확실성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이번 수상을 도착점이 아닌 앞으로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계기이자 계속 새로운 질문을 던지라는 격려로 받아들인다.
국제 입센상 심사위원회가 그의 연극에서 주목한 것은 찬성과 반대, 양극화된 구도로 쉽게 나뉘는 세계 속에서 ‘그 사이의 공간’을 상상하는 태도였다. 구자하가 펼쳐 보이는 그곳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모순과 복잡성을 서둘러 봉합하지 않고 함께 바라보게 하는 자리다. “제 작품에는 종종 로봇이나 이주자처럼 경계에 놓인 존재가 등장합니다. 저는 그런 존재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복잡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와 가치가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 아닐까 합니다.”

아래쪽 <하리보 김치>(2024). Photo by Bea Borgers
흥미롭게도 그의 작품은 거대한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음식, 냄새처럼 지극히 사적이고 작은 장면에서 비롯된다. “역사나 정치, 경제 같은 개념은 때때로 너무 추상적이라 실제 삶과 분리되어 보입니다. 반면, 음식이나 몸의 감각은 훨씬 직접적으로 삶과 연결되어 있죠.” 그가 지금껏 자신이 만든 작품의 무대 위에 직접 오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구자하는 스스로를 배우나 퍼포머라기보다 경험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로서 무대에 선다고 말한다.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와 맞닿고, 일상적 감각이 역사적 질문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살피기 위해서다.
사물과 비인간 존재가 중요한 말하기의 주체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 예가 〈쿠쿠〉다. 작품 속 밥솥은 누가 더 ‘진짜 밥솥’인지 논쟁을 벌이고, 관람객은 어느 순간 특정 밥솥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연민을 느낀다. 밥솥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낯설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 관람객은 정체성과 소속, 변화와 순수성 등의 문제에 감정적으로 연루된다. “비인간 존재의 목소리를 빌리는 것은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존재를 통해 인간의 언어와 시선만으로는 알 수 없던 이야기와 관계를 발견할 수 있죠. 인간과 비인간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는 하이브리드적 생태계,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에 더 가깝게 여겨집니다.”
올해 7월에 열리는 아비뇽 페스티벌은 구자하가 지난 10여 년간 구축해온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념비적 자리가 될 것이다.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 〈하리보 김치〉가 함께 소개되는 것은 그가 통과해온 서로 다른 시기를 나란히 바라보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경제 위기 이후 고립, 한국 연극의 정체성, 문화적 동화와 이주의 감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세 작품은 한국 사회와 역사에 뿌리를 둔 그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변주되고 확장되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기대하는 동시대 연극의 역할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감각과 질문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판단되며, 잊히는 시대에 연극은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도, 세상을 가장 빠르게 설명하는 형식도 아니지만 오히려 그 느림과 비효율성 때문에 다른 방식의 사유를 가능하게 합니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남기고, 단순화하기보다 복잡성을 견디게 하며, 빠른 결론보다 잠시 머무르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 구자하에게 연극이 여전히 할 수 있고, 어쩌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바로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