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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예술화하는 작가, 에스 데블린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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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하나의 언어로 만들어온 아티스트 에스 데블린. 국내 첫 개인전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를 통해 그가 전하는 공간과 서사, 그리고 함께 경험하는 감각에 대하여.

Photo by Daniel Devlin

비욘세와 U2, 아델, 켄드릭 라마의 공연 무대부터 런던 올림픽 폐막식과 슈퍼볼 하프타임 쇼까지. 에스 데블린(Es Devlin)은 지난 30여 년간 동시대 시각 문화의 상징적 장면을 만들어온 아티스트다. 공연 예술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이제 미술관과 공공 공간으로 확장됐다. 빛과 구조, 언어와 이미지를 엮어 공간 자체를 하나의 서사로 만드는 작업은 테이트 모던, V&A 뮤지엄, 서펜타인 갤러리, 쿠퍼 휴잇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뮤지엄 등 세계 주요 문화 기관으로 이어졌고, 2025년에는 MIT가 수여하는 유진 맥더모트 예술상을 받으며 예술과 기술, 인문학을 넘나드는 창작자로서 성취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오는 8월 20일, 푸투라서울에서 에스 데블린의 국내 첫 개인전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가 열린다. 대표작 ‘Infinite Library’, ‘Mirror Maze’, ‘Come Home Again’ 등을 푸투라서울의 독특한 건축 구조에 맞춰 새롭게 재구성한 전시다. 단순히 작품을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구조와 동선, 자연광의 흐름, 관람객의 움직임에 맞춰 다시 설계했다. 흥미로운 점은, 에스 데블린이 이번 전시를 하나의 ‘시(poem)’로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푸투라서울의 메인 전시 공간 ‘백 개의 시(100 Poems)’는 하나의 전시를 한 편의 시처럼 경험하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레픽 아나돌의 첫 번째 시, 앤서니 매콜의 두 번째 시에 이어 이곳에서 세 번째 전시를 선보이는 에스 데블린 역시 자신의 작업을 ‘세 번째 시’라고 표현한다. 전시장 내 공간이 연이어 이어지듯, 전시 또한 앞선 전시와 관계를 맺으며 흐름을 이어간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그에게 개인전 그 이상의, 앞선 두 편의 시를 잇는 또 하나의 시다.

푸투라서울의 ‘백 개의 시(100 Poems)’ 공간에서 레픽 아나돌, 앤서니 매콜에 이어 세 번째 전시를 선보이게 됐습니다. 에스 데블린의 국내 첫 개인전이기도 하고요. 한국에 제 작업을 처음 소개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번 전시는 2024년 처음 푸투라서울을 방문했을 때 시작됐습니다. 공간을 둘러보며 방과 방을 따라 이어지는 동선을 걷는 순간 전시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죠. 이후 지난 1년간 여러 차례 이곳을 찾으며 건물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봤고, 공간이 사람을 맞이하는 방식도 계속 들여다봤습니다. 푸투라서울은 ‘백 개의 시’라는 공간을 통해 전시를 하나의 시처럼 이어가는 곳입니다. 저 역시 그 개념에 깊이 공감했고, 레픽 아나돌과 앤서니 매콜에 이어 제 전시 역시 연작의 세 번째 시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공간이 하나에서 다음 공간으로 이어지듯, 전시 또한 앞선 전시와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길 바랐습니다. 각각의 전시가 공간과 관람객에게 새로운 시선을 건네는 한 편의 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전시는 ‘Infinite Library’부터 시작해 ‘Mirror Maze’, ‘Congregation’, ‘Come Home Again’, ‘Screenshare’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기준으로 구성했나요? 저는 이번 전시를 개별 작품의 집합이 아닌 하나의 여정으로 생각했습니다. 관람객은 ‘Infinite Library’에서 여정을 시작합니다. 수천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하나의 영상을 함께 바라보며 시간을 공유하죠. 저는 이 작품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경험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Mirror Maze’에서는 거울과 빛으로 이루어진 미로를 걸으며 자신의 모습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을 향하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타인과 공간으로 확장되고, 관람객은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죠. 그 시선은 ‘Congregation’에서 인간을 넘어 다른 생명으로 확장됩니다. AI를 활용해 구현한 수백 종의 생명체가 하나의 군집을 이루는 작품으로,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이 하나의 생태를 이룬다는 감각을 전합니다. 그리고 여정의 끝에는 이번 전시의 정서적 중심인 ‘Come Home Again’이 자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Home)’은 특정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본래 하나의 생태 안에 속한 존재였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감각입니다. 마지막 ‘Screenshare’에서는 지난 30년간 제가 사용한 수백 권의 스케치북이 하나의 작품이 되어 있는 걸 보게 됩니다.

‘Library of Light’, 2025. Photo by Es Devlin

푸투라서울은 건축적 존재감이 강한 공간입니다.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어떤 부분을 새롭게 구성했나요?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건물 형태였습니다. 유기적 곡선과 직선적 구조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이 도시와 자연 사이를 오가는 우리 삶과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이번 작업은 그런 건축의 성격에 대한 저만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빛이었습니다. 건물이 빛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방식이 무척 아름답더군요. 저는 그 모습이 마치 악기가 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백 개의 시(100 Poems)’ 공간의 역할도 새롭게 바꿨습니다. 원래 동선의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공간이지만, 과감하게 이곳에서 전시가 시작되도록 구성했습니다. 관람객이 공간 자체를 몸으로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죠. 또 작품에 사용한 텍스트와 설치 작업에 등장하는 생물도 서울이라는 장소에 맞게 새롭게 조정했습니다. 텍스트는 다시 번역하고 다듬었으며, 생물은 서울 주변에서 살아가는 종을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이 공간과 실제로 연결된 존재를 작품 안으로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전시 제목이자 작품명이기도 한 에는 ‘집(Home)’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작품에서 말하는 ‘Home’은 단순히 장소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전시라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다만 저는 ‘Come Home Again’이라는 제목이 하나의 초대처럼 다가가길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번 전시는 7개 작품으로 이루어지지만, 저는 그것을 하나의 여정으로 생각했습니다.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끝나는 경험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정은 이어질 수 있다고 봤어요. ‘Come Home Again’이라는 문장은 미국의 환경철학자 조애나 머시(Joanna Macy)의 를 읽다가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는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감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구절이었어요. 이번 전시 역시 그 문장에서 출발했습니다. 나와 타인, 인간과 자연이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하고, 그 감각을 전시장에서 끝내지 않은 채 일상으로 가져가는 것.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바로 그런 의미죠.

비욘세, U2, 아델의 공연을 비롯한 대형 스테이지 작업 역시 당신을 대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수만 명의 감정을 움직이는 공연 무대를 창조한다는 경험이 지금의 설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스타디움은 매우 특별한 공간입니다. 수만 명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지만, 동시에 관객은 무대 위 아티스트와 자신만의 연결을 원합니다. 거대한 집단의 경험과 개인적 경험이 공존하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어떤 규모의 공연이든 무대를 만든다는 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뤄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늘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의 작가 마이아 앤절로는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말했는지, 무엇을 했는지는 잊어도, 어떤 감정을 느끼게 했는지는 결코 잊지 않는다”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을 늘 떠올립니다. 비단 무대만이 아니라 어떤 작업에 임할 때도 유념하는 말이죠.

지난 2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션들과 협업해왔습니다. 당신은 무대 디자이너와 설치미술가의 차이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운이 좋게도 저는 늘 자신만의 세계가 분명한 음악가들과 작업해왔습니다. 모두 강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고, 제가 하는 일은 그 에너제틱함이 관객에게 더 깊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나의 형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무대를 꾸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저 자신을 무대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면, 지금은 ‘무대 조각(Stage Sculpture)’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공연이든 전시든, 결국 제가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몸으로 경험하는 공간입니다. 작업의 분야는 달라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Tristan and Isolde’, MET Opera, 2026. Photo by Es Devlin
‘DEAR ENGLAND’, 2023. Photo by Daniel Devlin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의 공연과 전시를 휴대폰 화면으로 먼저 접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작업은 ‘현장’을 전제로 하죠. 실제 공간에서만 가능한 경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은 머리뿐 아니라 몸으로도 사고합니다. 손끝에도 뉴런이 있고, 발바닥으로 공간을 느끼며, 피부로 공기의 움직임을 감지하죠. 실제 공간에서는 몸 전체가 끊임없이 반응합니다. 그런 경험은 화면으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통해 공간을 경험하는 순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페라부터 팝 콘서트, 공공 설치, 미술관 등 규모는 달라도 다양한 장소에서 하나의 ‘장면(Scene)’을 만들고 있죠. 당신은 ‘기억될 장면’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언제나 가장 명확한 형태를 만들고 싶습니다. 동시에 가장 시적인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고요. 제가 말하는 ‘시적’이라는 것은 어렵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노랫말처럼 짧지만 오래 남는 언어에 가깝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자신의 경험으로 조금씩 다르게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이자, 한 편의 시처럼 오래 남는 장면을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구글 아트 앤 컬처, MIT 등과 협업하며 AI와 집단 참여를 활용한 프로젝트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당신의 창작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영국의 SF 작가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는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그 문장을 마음에 품고 작업해왔습니다. 하지만 기술 자체가 목적이 된 적은 없습니다. 제게 기술은 익숙한 감각을 잠시 흔들어주고, 당연하게 여기던 방식에서 한 걸음 벗어나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매개입니다.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공연보다 설치미술과 공공 프로젝트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가장 탐구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요?
연결이죠. 사람과 사람,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 존재 같지만, 사실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저는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공간 안에서 어떻게 경험하게 할 수 있을지 계속 탐구하고 있습니다.

오는 8월에 열릴 전시를 볼 한국 관람객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전시의 마지막에는 ‘Screenshare’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제가 사용해온 수백 권의 스케치북으로 만든 스크린 위에 영상이 투사되죠. 영상은 관람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스크린의 한 조각을 가져가세요. 스케치 한 장을 당신의 것으로 가져가세요.” 각 스케치북 조각은 관람객의 손에 쥐여질 것이고, 흩뿌려지는 씨앗처럼 각자의 삶으로 흩어질 것입니다. 저는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 돌아간 뒤에도 그 작은 씨앗 하나를 마음에 품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전시를 떠올릴 때, 이곳에서 경험했던 빛과 공간, 그리고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감각도 함께 기억해주었으면 해요.

  • 에디터 이호준
  • 사진 푸투라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