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피어난 티아라의 찬란한 유산
오랜 유산과 동시대적 감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티아라의 끝없는 진화
머리 위 작은 아치, 티아라는 오랜 시간 권위와 영광을 상징해왔다. 오늘날 티아라로 이어지는 머리 장식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의 디아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머리에 두르는 띠 형태의 디아뎀은 헬레니즘 시대에 통치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고, 이후 왕권을 드러내는 다양한 장식으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티아라는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일까. 그 전환점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시대다. 프랑스혁명 이후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은 제국의 정당성을 구축하기 위해 고대 로마와 프랑스 왕실의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티아라 역시 그 과정에서 다시 주목받은 장식 중 하나였다. 특히 조세핀 황후는 월계수와 오크잎 등 고대와 자연에서 영감받은 모티브를 즐겨 착용했고, 1811년경 쇼메가 제작한 밀 이삭 티아라는 9개의 밀 이삭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당시의 자연주의적 미감을 엿볼 수 있다.
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기에 이르러 티아라는 유럽 상류사회의 사교 문화를 대표하는 주얼리로 전성기를 맞았다. 주요 메종은 왕실과 귀족을 위한 티아라를 제작하며 각자의 기술과 미학을 발전시켰다. 특히 까르띠에가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플래티넘은 얇고 가벼운 프레임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하면서 형태가 더욱 섬세해졌다. 화려한 장식을 넘어 당시 하이 주얼리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발전한 것이다. 왕실을 위해 제작한 티아라에는 당대의 문화와 시대적 배경도 담겼다. 영국의 메리 왕비가 착용한 델리 더르바르 티아라는 인도에서 가져온 보석과 인도풍 장식을 활용해 당시 영국과 인도의 관계를 증명한다. 1938년에는 반클리프 아펠이 1년 뒤 진행될 이집트 파우지아 공주의 결혼을 위해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로 티아라를 제작했다. 아르데코의 전통을 이어받은 간결한 선과 풍부한 다이아몬드 세팅으로 완성해 당시 왕실을 위한 하이 주얼리의 규모와 기술력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탄생한 티아라는 세대를 거쳐 새로운 순간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부쉐론의 그레빌 에메랄드 코코쉬닉 티아라는 오랜 시간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가 2018년 프린세스 유제니의 결혼식에서 다시 등장했고, 2025년에는 카밀라 왕비가 착용했다. 까르띠에가 1936년 제작한 헤일로 티아라 역시 요크 공작이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선물한 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전해졌으며, 이후 마거릿 공주와 앤 공주 등이 착용하며 오랜 시간 왕실의 역사와 함께했다.
티아라의 계보가 왕실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패션과 웨딩, 레드 카펫으로 영역을 넓혔다. 2016년 생 로랑은 록을 테마로 한 컬렉션에 크리스털 티아라를 등장시켜 흐트러진 헤어와 가죽, 슬립 드레스와 함께 매치해 인상적인 순간을 남겼다. 한편 웨딩에서는 오랫동안 꿈꿔온 신부의 모습을 완성하는 주얼리로 자리 잡았고, 레드 카펫에서는 드레스 일부가 아닌 독립적인 스타일링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하이 주얼리 메종은 역사적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티아라를 선보이고, 패션 브랜드는 크리스털과 메탈,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헤드피스 형태로 변주한다. 오래된 장식은 시대의 감각을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며 지금도 그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