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없는 여정의 힘,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서울 한복판에 솟은 장대한 루이 비통의 무대. 거대한 트렁크 속 화려한 시노그래피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루이 비통 공간이 한국에 상륙했다. 서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어떤 상징으로 남게 될까. 사실 브랜드가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는 방식은 수만 가지다. 더구나 요즘처럼 AI 기술이 날로 정교해지는 세상에선 반드시 벽돌이나 콘크리트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루이 비통은 OMA와 휴고 토로(Hugo Toro)를 비롯해 수많은 아티스트와 손잡고 이토록 복잡다단한 공간을 서울 한가운데에 내세웠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LV 더 플레이스 서울, 신세계 더 리저브 내에 자리한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Louis Vuitton Visionary Journeys Seoul)’은 도시 자체의 구조적 속성과 닮았다. 도시는 본질적으로 수직의 역사를 쓴다. 농경 사회가 수평으로 땅을 넓혀왔다면, 도시는 층을 더하며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건축은 그 사실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증거다. 어쩌면 한 브랜드의 역사도 비슷한 궤적을 그려왔는지 모른다. 1854년, 청년 루이 비통이 층층이 쌓기 어려운 둥근 형태의 여행용 트렁크 대신 평평한 상자형 트렁크를 만들며 ‘현대적 여행’의 시작을 알린 것처럼. 항구와 기차역에 트렁크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 그때, 비로소 여행은 삶을 새롭게 정의하는 문화이자 예술이 됐다. 그렇기에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이 6개 층을 관통하는 구조로 펼쳐지는 것은 단순히 세계 최대 규모라는 타이틀을 과시하기 위함이거나 주어진 건물의 레이어를 수동적으로 따른 결과가 아니다. 공간은 결국 감각의 총합이다. 판테온에 들어서는 순간 그 시간의 층위에 단숨에 압도되듯, 우리는 좋은 공간 앞에서 설명을 듣고 이해하기보다 체험을 먼저 하게 된다. 따라서 이곳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은 그간 루이 비통이 걸어온 시간에 대한 거대한 초대장이다.
오직 서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
a여행의 묘미는 새로움의 발견에 있다. 꼭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보일 때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동양적으로 재해석한 모노그램 캔버스로 둘러싸인 외관을 지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장대한 시노그래피의 연속이다. 6개 층은 루이 비통의 장인정신과 문화적 제스처, 그리고 미식 경험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트렁크처럼 구성했다. 마치 과거 여행자들이 책과 옷가지, 다양한 생활 기물을 차곡차곡 담아두던 트렁크를 하나씩 열어볼 때의 기분처럼 층을 오를 때마다 새로운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1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매장은 전통 색동의 색감을 현대적으로 끌어와 따뜻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성과 남성 컬렉션, 워치 & 주얼리, 슈즈, 기프트, 향수, 홈 컬렉션 등이 각각의 세계를 이루고, 그 사이사이를 허경애, 조현선, 임미량, 신제현, 이현정, 오승열, 안나 한 등 한국 현대 예술가들의 작업이 채운다. 또 천장에선 한국 전통 건축의 육각 문양과 창호 패턴에서 영감을 받은 목조 구조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이곳이 ‘서울에서만 가능한 루이 비통’이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달한다.

무한히 확장되고 변주되는 헤리티지
‘여행, 장인정신, 혁신’이라는 하우스의 핵심 유산을 한데 묶어 감각적으로 풀어낸 문화 체험형 공간은 OMA 시게마츠 쇼헤이의 손길을 거쳐 입구부터 새롭다. 수백 개의 부아뜨 샤포(Boîte Chapeau, 햇박스)가 천장부터 벽면까지 빽빽하게 채운 ‘트렁크스케이프(Trunkscape)’ 룸은 그 상징적 출발점. 조르주 비통이 자동차 여행 시대를 맞아 고안해낸 트렁크 백의 아이코닉한 특징이 극적 형태로 관람자를 맞이하는 장면에서 앞으로 펼쳐질 여정이 결코 예사롭지 않을 것을 예감할 수 있다. 본격적인 전시는 5층에서 시작된다. ‘기원(Origins)’ 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병풍에서 영감을 받아 벽과 천장을 뒤덮은 격자형 목재 구조물이다. 아래에는 루이 비통 트렁크의 역사와 문화를 증명하는 각종 문서와 이미지를 촘촘히 배치했는데, 그 방대한 아카이브를 지나는 순간 마치 오래된 사전 속을 거니는 것 같다. 루이 비통 트렁크는 목적에 따라 형태를 달리했다. 의류, 모자, 신발, 셔츠 등 특정 아이템을 위한 전용 트렁크부터 기차, 자동차, 여객선 등 이동 수단의 변화에 따라 진화한 트렁크도 여럿이다. 탐험가를 위해 고안한 모델은 특히 흥미롭다. 열대 기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부를 아연으로 마감한 트렁크, 탐험 중 침대로 활용 가능한 접이식 침대 트렁크 같은 아이디어는 당시 장인정신이 얼마나 실용적이고 대담했는지 보여준다. 이어지는 공간은 루이 비통이 여행을 위한 실용적 오브제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해온 궤적을 흥미롭게 압축해 보여준다. 공간 한가운데에 놓인 정교한 워치메이킹 트렁크, 이를 둘러싼 벽에 구멍을 내 다양한 워치 컬렉션과 워치메이킹 영상을 상영하는 ‘워치(Watches)’ 룸이 그 전환의 첫 순서다. 1909년 별 모양에서 영감을 받은 소형 알람 시계 ‘스타 클락’을 시작으로 2002년 땅부르 워치를 통해 본격적인 현대 워치메이킹에 진입한 시도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피크닉(Picnic)’ 룸에서는 여행이 일상화된 시대에 선보인 혁신적 트렁크를 만날 수 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20세기 초 자동차 시대가 열리며 등장한 오토-캠핑카다. 켈너와 함께 설계한 이 모델은 접이식 텐트와 콤팩트한 가구, 야외 식사를 위한 피크닉 트렁크가 포함돼 그 시대 도로 위 낭만을 생생히 전달한다. 2021년 등장한 미식 케이스 ‘스낵 박스’는 피크닉 트렁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로,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2024년 크루즈 컬렉션에서 부아뜨 샤포 실루엣을 다시금 호출한 것도 바로 이 유산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개성 넘치는 트렁크로 둘러싸인 ‘맞춤 제작(Personalisation)’ 룸에서는 루이 비통의 맞춤 제작 기술이 어떻게 하나의 예술이 됐는지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다. 복잡한 기차역이나 항구에서 수하물을 식별하기 위해 만든 기능적 표식에서 출발, 색띠 · 이니셜 · 엠블럼을 손으로 그려 넣던 초기 방식은 가스통 루이 비통 시대에 이르러 장식 예술과 결합했다. 문장, 기하학 패턴, 금박 등 다양한 모티브를 도입하면서 트렁크는 단순한 짐 보관함을 넘어 하나뿐인 예술 작품이 됐다. 자선가 알베르 칸의 흰색 십자가 표식, 디자이너 폴 푸아레의 이름 발음을 점과 줄무늬 깃발 모양으로 재치 있게 전환한 표식 등은 그 시대의 개성과 취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유산은 2025년 재도입한 ‘몽 모노그램’ 서비스로 이어지며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1859년 루이 비통이 아니에르에 첫 공방을 연 후 이어온 장인정신의 흐름은 ‘공방(Workshop)’ 룸에서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조향의 본고장 그라스의 레 퐁텐 파르퓌메 공방, 워치메이킹을 맡은 라 파브리크 뒤 떵, 가죽 제작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베이 방돔 공방까지, 각 공방이 품은 ‘손의 시간’이 시각화된다. 이어지는 ‘테스트(Testing)’ 룸에서는 제품의 내구성 테스트 과정을 재현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수천 번 열리고 닫히며 기계적 압력을 견디는 제품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럭셔리’라고 부르는 것의 기반이 얼마나 고집스러운 엄격함인지 새삼 느껴진다. 일곱 번째 ‘아이콘(Icons)’ 룸은 여행용 트렁크로 시작된 브랜드가 어떻게 현대 패션의 가장 강렬한 아이콘을 만들 수 있었는지 집약해 보여준다.

장과 바닥의 거울은 낮은 층고를 보완하며 관람객을 집중시키는 장치로, 마치 아득한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알마, 스피디, 키폴, 쁘띠뜨 말 등 시대를 대표하는 핸드백들이 마크 제이콥스, 킴 존스, 버질 아블로, 니콜라 제스키에르, 퍼렐 윌리엄스 등 각 시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치며 어떻게 재해석됐는지 한눈에 드러난다. 이어지는 ‘모노그램(Monogram)’ 룸에서는 조르주 비통이 만든 궁극의 시그니처, 모노그램 캔버스의 상징성을 이색적으로 조명한다. 테디 베어부터 축구공, 북 월릿, 노틸러스 백에 이르기까지 모노그램을 입은 오브제들을 통해 무한한 재해석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볼거리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면 거대한 아트리움을 마주하게 된다. 모노그램 패턴을 입은 한지 조형물이 내는 은은한 빛 앞에서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 역시 자연스레 올라간다. 시원한 블루 톤에 방음판을 연상케 하는 입체적 조각으로 뒤덮인 ‘음악(Music)’ 룸은 전시의 여정에 새로운 리듬감을 더한다. 악기 케이스, 휴대용 스피커, DJ 박스, 아이팟 케이스 등 익숙한 오브제들이 루이 비통의 손길을 통해 조형적이고 예술적인 오브제로 변모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문화 체험형 공간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협업(Collaboration)’ 룸과 ‘패션(Fashion)’ 룸이다. 무라카미 다카시, 쿠사마 야요이, 니고, 박서보, 스테판 스프라우스 등 세계적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한 백이 회전판 위에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협업 룸을 360도로 둘러싼 스크린이 각 패턴으로 물든다. 공항과 기차역의 도착 보드를 떠올리게 하는 스플릿 플랩 디스플레이로 둘러싸인 패션 룸은 아티스틱 디렉터 5인이 만들어온 루이 비통 패션의 진화 과정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플랩이 넘어가며 내는 특유의 경쾌한 소리는 공간을 빠져나온 후에도 귓가에 계속 맴돌며 미묘한 울림을 남긴다.
여정의 피날레, 또 다른 시작
여행에 미식이 빠질 리 없다. 문화 체험형 공간이 끝나는 4층 안쪽에는 잠시 숨을 고르고 감각을 다시 깨우는 ‘르 카페 루이 비통(Le Café Louis Vuitton)’이 있다. 2025년 월드 베스트 페이스트리 셰프로 선정된 막심 프레데릭은 프랑스 전통에 한국적 디테일을 섬세하게 얹어,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과 다미에 코드를 초콜릿과 페이스트리 아트라는 또 다른 영역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마지막 피날레는 이 건물 최상층에 비밀스럽게 자리한 레스토랑, ‘제이피 앳 루이 비통(JP at Louis Vuitton)’이다. 뉴욕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아토믹스의 오너 셰프 박정현(JP)이 총괄하는 다이닝은 여행의 마지막 밤처럼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간장 게장과 계란찜, 비트 퓨레와 갈비 소스를 결들인 한우 채끝 등심, 막걸리 폼을 얹은 쌀 아이스크림과 솔순 소르베까지. 단순 협업을 넘어 창작에 가까운 이 미식은 루이 비통이라는 브랜드가 어떤 방식으로 경험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지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한다.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을 이루는 것은 결국 단순한 제품의 나열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다. 다채로운 아카이브와 상징적 오브제를 하나하나 통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장면 전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만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여정의 가치라는 것을. 1837년 트렁크 장인이 되겠다며 파리 땅을 밟은 열여섯 살 루이 비통의 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여기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 에디터 윤정훈
- 사진 루이 비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