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결을 입은 단 한 대의 페라리
‘전통에서 영감을, 혁신으로 추진력을’이라는 테마 아래, 한국 아티스트들과 함께 완성한 페라리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의 예술적 서사.

Q 공통 질문
1 페라리와 함께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어떤 작업을 진행했나?
2 12칠린드리의 디자인 언어를 어떻게 해석했고, 한국적 요소로 재해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은 무엇이었나?
3 협업을 통해 경험한 페라리는 어떤 브랜드로 느껴졌으며, 또 아티스트로서 이번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로 남았나?
‘맞춤’이라는 말이 흔해진 시대에도, 여전히 그 단어의 무게를 증명하는 브랜드가 있다. 페라리는 오랜 시간 퍼포먼스와 레이싱의 언어로 자신을 정의해왔지만, 동시에 개개인의 취향과 태도를 구현해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철학의 정점에 놓인 프로그램이 바로 페라리 테일러메이드다. 그리고 그 최근의 결과물이 한국을 위해 탄생했다. 2026년 1월, 서울에서 공개한 페라리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Ferrari 12Cilindri Tailor Made)는 오직 한국 시장만을 위해 제작한 단 한 대의 모델이다. 이 프로젝트의 기반이 된 페라리 12칠린드리는 브랜드의 유서 깊은 프런트 엔진 V12 GT 계보를 잇는 최신 모델로 1950~1960년대 페라리 GT의 우아함과 성능을 계승하며, 전통과 진화를 균형 있게 이어간다.
새롭게 선보이는 모델에서 페라리는 ‘얼마나 빠른가?’보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를 묻는다. 페라리 최고 디자인 책임자 플라비오 만초니(Flavio Manzoni)와 스타일링 센터를 중심으로, 공동 창립자 에반 오렌스텐(Evan Orensten)과 조시 루빈(Josh Rubin)이 이끄는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쿨헌팅(Cool Hunting), 프로젝트 기획자 이재은(Jane Lee)을 비롯해 이태현, 그레이코드 & 지인, 정다혜, 김현희 총 4팀의 한국 아티스트가 협업해 이루어낸 하나의 마스터피스다. 이번 프로젝트는 ‘전통에서 영감을, 혁신으로 추진력을(Inspired by Tradition, Powered by Innovation)’이라는 테마 아래 한국의 자연과 도시, 공예와 현대적 감각을 페라리의 기술과 아티스트의 예술 언어로 재해석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요소는 외장 컬러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 개발한 페인트 ‘윤슬’은 빛의 각도와 환경에 따라 녹색과 보라색 사이를 미묘하게 오간다. 고려청자의 깊은 색감, 전자음악의 리듬,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서울의 야경에서 영감을 받은 이 컬러는 바다 위에서 반짝이는 햇살을 뜻하는 순우리말처럼 유동적이고 감각적이다. 차체 위에 고정된 색이 아니라, 움직임과 빛에 반응하는 표면으로 존재하는 것. 그뿐 아니라 외관 리버리에 새긴 음악적 패턴의 디테일은 그 시각적 리듬을 내부로 이으며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말총공예, 옻칠, 혼수함 시리즈 등 한국 미학을 대표하는 재료와 기법은 전례 없는 시도와 도전 속에서 기능적 요소로 구현되었다. 시트와 바닥, 대시보드에 이르기까지 적용한 디테일은 장식적 차원을 넘어 ‘이 차가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 태어났는지’ 조용히 드러낸다. 2년이 넘는 작업 과정을 통해 페라리 고유의 서사를 완성한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 아티스트들을 직접 만나 그 과정과 소감에 대해 물었다.

이태현
1 작가이자 프로젝트 컬래버레이터로 참여하며 페라리에 한 번도 적용된 적 없는 소재와 마감을 연구했고, 가능한 한 많은 ‘처음’을 만들어보려 했다. 최근 집중해온 옻칠 작업에서도 기존의 붉은 주합 대신 한국적 색으로 느껴지는 흰색을 택했다. 페라리 역사상 처음으로 패들 시프트에는 신기술 세라믹 코팅을, 브레이크 캘리퍼에는 고열을 견디는 새로운 마감을 적용하며 흰색을 입혔다.
2 페라리의 상징적 모델, 12칠린드리는 1970년대부터 이어온 12기통 엔진의 역사와 기술이 반복과 축적을 통해 지금의 형태에 도달했다. 이 지점을 보며, 한국의 전통 기술 역시 오랜 시간 같은 방식으로 발전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옻칠은 단순한 전통 재료가 아니라, 시간을 견디며 계속 갱신해온 기술이다.
3 어린 시절부터 페라리를 동경했고, 이번 프로젝트는 그 오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험이었다. 마라넬로 공장에서 엔지니어들과 대화를 나누고, 플라비오 만초니와 직접 작업에 대해 논의한 과정은 지금도 믿기 어려울 만큼 강렬했다. 무엇보다 내 작업을 하나의 기념비적 차와 함께 선보였다는 사실이 더욱 깊은 의미로 남는다.

정다혜
1 말총공예의 섬세한 짜임은 형태를 성립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이자, 페라리 고유의 단단함과도 맞닿아 있다. 이 짜임을 모티브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대시보드에 실제 흰색 말총을 적용했고, 시트와 선루프에도 그 패턴을 반영했다.
2 12기통 차량을 마주했을 때 예상보다 훨씬 섬세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 점이 말총의 성질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고려 말, 조선 초부터 이어진 말총공예는 전통적으로 검은 말총을 주로 사용하지만, 재료의 연약함과 입체감이 더 잘 드러나는 흰색 말총을 선택했다. 이에 맞춰 짜임의 간격과 밀도를 변화시키며 작업했다.
3 페라리 역시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예술적으로 느껴졌다. 말총이라는 재료의 조건이 형태와 미감으로 이어지듯, 페라리 또한 속도를 위한 설계가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이번 협업은 작품 세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레이코드, 지인
1 이번 작업은 페라리의 V12 엔진에서 출발했다. 엔진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울림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그 흔적을 차량 보닛에 새기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보닛을 열어보거나 시동을 걸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엔진 구조를 재해석한 하나의 시각적 언어로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인다.
2 디자인은 시각보다 청각과 촉각으로 먼저 다가왔다. 엔진의 사운드와 몸으로 전해지는 진동, 공기의 흐름 같은 감각을 음악적 구조로 해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계속 작업해온 우리 감각 자체가 한국적 요소로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체성이 하나의 헤리티지로 남아 ‘미래의 클래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3 페라리의 예술적 태도에서 브랜드의 고유한 철학을 느꼈다. 엔진을 대하는 섬세함과 진지함이 많은 자극과 영감을 주었고 작가가 직접적으로, 깊이 관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것이 인상 깊었다.

김현희
1 퇴색된 과거의 한국 이미지와 현대의 물성을 결합해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스쿠데리아 페라리 실드와 휠 캡, 페라리 레터링 엠블럼, 그리고 프랜싱 호스(도약하는 말) 로고를 비롯해 이 여정의 의미를 담아 직접 전통 서예로 프로젝트명을 써 내려간 데디케이션 플레이트를 제작했다.
2 페라리와 나 그리고 한국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가 중요했다.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태도에서 공통점을 보았고, 나의 연작 ‘화이트 노스탤지어’와 연관 지어 작업했다. 특히 흰색은 백의민족, 한(恨) 등 한국에서 중요한 정서를 지닌 색인 만큼 반투명한 흰색 아크릴을 통해 익숙한 상징들을 변주했다.
3 페라리는 변치 않는 심장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처럼 느껴졌다. 가구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정적 오브제를 다뤄온 내게 페라리와의 협업은 빠르게 이동하는 하나의 ‘움직이는 집’을 만드는 경험이었다. 아티스트로서 색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에디터 정희윤
- 사진 페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