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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에르메스 메종 도산이 초대하는 익숙한 풍경 너머 놀라운 미지의 세계.

에르메스 메종 도산 윈도 디스플레이.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가져와 에르메스 스카프를 흥미롭게 재해석했다. Photo by Sangtae Kim.

인간은 빈칸을 그저 빈칸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가본 적 없는 곳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고, 닿을 수 없는 세계를 꿈꾸며 그 너머로 나아간다. 19세기 중반 쥘 베른이 상상 속 잠수함을 타고 바다 깊은 곳과 지구 내부로 향하고, 루이스 캐럴이 토끼굴 너머 전혀 다른 규칙이 작동하는 세계를 펼쳐 보였듯.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그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지어내는 일이 아니라, 눈앞의 세계 너머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확고한 믿음인지 모른다. 에르메스의 쇼윈도 역시 오래전부터 그런 상상의 통로였다. 1930년대에 장갑 매장 판매원이던 애니 보멜이 우연히 쇼윈도 담당 매니저를 대신하면서 그것을 하나의 캔버스로 바꿨고, 1960년대에 레일라 멘샤리가 만든 화려하고 대담한 장면을 통해 에르메스의 쇼윈도는 작은 극장이자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문이 됐다. 이후 에르메스는 매년 새로운 테마를 정해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각 도시의 쇼윈도를 더욱 확장된 방식으로 채우고 있다. 올해는 ‘미지의 세계로(Venture Beyond)’라는 테마에 따라, 한국 작가 이동훈의 시선으로 에르메스 메종 도산의 가을 윈도 디스플레이를 새롭게 펼쳐낸다. 8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선보이는 ‘창밖으로 떠나는 여정(A Journey beyond the Window)’은 일상의 풍경에서 출발해 창밖 세계, 그 너머 미지의 세상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이동훈은 식물, 동물, 인물 등을 나무로 조각하고 그것을 다시 그림으로 옮기며 입체와 평면의 관계를 실험해왔다. 그의 조각에는 세밀한 윤곽이나 매끈한 질감 대신 투박한 형태와 나무의 자연스러운 질감, 과감한 색감과 은근한 유머 감각이 깃들어 있는데, 이로써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대상도 사뭇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이동훈 작가. Photo by Sangtae Kim.

이번 에르메스 메종 도산의 첫 번째 쇼윈도에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뇌에 빠진 듯한 인물 조각과 에르메스의 마구 제품, 전기톱 조각을 함께 놓았다. 미켈란젤로의 작업실을 묘사한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이 공간은 하나의 아트 피스가 완성되기까지 수반되는 깊은 고민과 시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손을 떠올리게 한다. 두 번째 쇼윈도에서는 카메라옵스큐라가 등장한다. 작은 구멍을 통과한 빛이 바깥 풍경을 어두운 공간 안에 거꾸로 투영하는 이 오래된 광학 장치는 ‘창 너머 세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작가는 이 원리를 이용해 가와하라 신스케가 디자인한 스카프 ‘Le Pommier Sellier’​의 사과나무와 말이 있는 풍경을 창밖에 펼쳐놓았다. 현실의 풍경과 에르메스의 오브제, 아티스트의 상상이 한 장면에서 뒤섞이며 익숙한 세계에 작은 균열을 낸다. 이동훈 작가가 제안하는 창 너머 세계의 여정은 일상의 도구나 창밖 나무처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것에서 출발한다. 90여 년 전 에르메스의 쇼윈도에서 시작된 상상은 익숙한 도시 풍경 속 하나의 창을 통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작업실을 재현해 창작의 고뇌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Photo by Sangtae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