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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해방

CULTURE

2026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를 총괄하는 최빛나 예술감독을 서촌의 스튜디오에서 만나 미완의 상태로 남은 ‘해방’을 오늘의 감각으로 어떻게 다시 사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5월 9일 개막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예술감독을 맡은 최빛나 큐레이터. 2016년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와 2022년 싱가포르 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 2025년 하와이 트리엔날레 공동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네덜란드 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2008년부터 2023년까지 디렉터로 활동했다. 이번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에서 그는 오늘날 분열된 세계를 다시금 바라본다. 세계화 이후 가속화된 연결이 단절과 경계로 회귀하는 흐름 속에서 ‘국가’와 ‘공동체’의 의미를 재고하는 것. 광복 이후 미완의 상태로 남은 ‘해방공간’을 현재진행형 시간으로 끌어와 요새와 둥지라는 상반된 감각이 공존하는 구조로 풀어낼 예정이다. 관람객이 공간을 따라 움직이고 머무는 과정에서 관계와 경험에 접속하도록 설계된 이번 전시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작동하는 ‘살아 있는 기념비’를 지향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선정될 당시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2024년 말 불법계엄으로 촉발된, 매주 토요일에 열린 집회 현장을 목격하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한국이라는 국가가 세계에 나눌 수 있는 의미, 그리고 ‘국가관을 의미 있게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침 하와이 트리엔날레를 마무리하던 시기였는데, 그 과정에서 ‘애국심’, ‘주권’, ‘해방’ 같은 개념을 하와이 선주민 운동을 통해 새롭게 보게 됐거든요. 이후 네덜란드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 나라와 나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던 차에 예술감독 공모 선정 발표가 났고,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해요.

‘해방공간’이라는 개념을 이번 전시에서는 어떻게 읽어내나요? 해방공간은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까지의 시기를 지칭하는 용어예요. 삶과 사회, 국가를 완전히 재조직하고자 열띤 참여와 움직임이 있던 시기였지만 결국 분단에 이르렀고, 이후 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치게 됩니다. 저는 해방이 과거의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갈등과 화해, 긴장과 좌절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요. 그럼에도 식민의 역사를 겪은 국가 중 한국만큼 정치적 수준이 높은 사례는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저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짚어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한국관 자체를 ‘해방공간 기념비’로 설정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어떤 맥락에서 형성된 것인가요? 베니스 자르디니에 한국관이 세워진 1995년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전환기였습니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가 시작됐고 ‘미술의 해’ 지정,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최 등 문화예술 전반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난 시기죠. 한국관은 일본관과 독일관 사이, 제한된 조건에서 형성된 비정형적 구조를 띠는데요. 저는 이러한 조건이 한국의 역사적 궤적과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해방공간을 고정된 상태가 아닌 유동적 과정으로 본다면, 지금의 한국관을 하나의 기념비로 다시 읽고 그에 맞는 형식으로 갱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새와 둥지’라는 부제 아래 최고은, 노혜리 두 작가에게 작업을 의뢰하셨죠. 이들을 선택한 이유와 각각 주목한 지점은 무엇인가요? 이번 전시는 단순히 화이트 큐브에 놓일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관이 지닌 해방공간적 의미를 고려해 건축 형태와 구조에 개입하는 작업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최고은 작가는 메탈이라는 하드한 재료로 조각 작업을 하는 드문 여성 아티스트예요. 2024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 ‘에어록’이라는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공간이 완전히 재편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죠. 작품 하나가 공간을 흔들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관계 맺는 방식까지 바꿔버리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였습니다. 동시에 완전히 다른 결의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공간을 순환하고 긴장을 풀어주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장악할 수 있는 감각이요. 그뿐 아니라 해방공간의 지향점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 맥락에서 노혜리 작가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최고은 작가의 ‘메르디앙(Meridian)’은 ‘요새’를 이룬다고 들었습니다. 최고은 작가는 보이지 않는 공공 기반 시설을 조형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여왔습니다. 이를 형태로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에서 환경과 감응하도록 만들고요. 수도관을 만들 때 쓰는 동파이프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데, 이를 활용해 한국관의 안과 밖, 내부의 또 다른 내부, 위와 아래를 관통하는 형태로 설치됩니다. 공격적이고 위협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딘가 유연한 감각이 느껴지기도 하는 작업이에요. 국가의 기존 틀에 대한 도전이면서 해방공간 속 격정이나 갈등을 표현하기도 하고, 관람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역할도 해내죠. 특히 이 동파이프는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인프라이기에 우리를 연결하는 기반을 가시화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연결의 감각은 ‘메르디앙’이라는 제목에서도 드러나요. 세계 시간의 기준이 되는 자오선을 뜻하는 동시에 신체에서 기가 흐르는 길을 의미하거든요.

왼쪽 최고은, ‘Merdian(work-in-progress)’, 2026. Photo by Jongchul Lee. © 2026 Korean Pavilion
오른쪽 노혜리, ‘Bearing (work-in-progress)’, 2026. Photo by Jongchul Lee. © 2026 Korean Pavilion

반면, 노혜리 작가의 ‘베어링(Bearing)’은 ‘둥지’를 상징하죠. 노혜리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베어링’은 품고, 지탱하고, 인내하고, 방향을 바꾼다는 다의적 단어로, ‘미래에 나와 함께하게 될 수도 있는 나의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삶의 모습’을 담고 있어요. 작업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먼저 얇은 원형 오간자에 왁스를 입혀 반투명하게 만든 재료를 꿰매고 연결한 막이 한국관 내부를 따라 설치되며, 일종의 보호막처럼 공간을 감쌉니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해방공간을 갱신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행 방식을 전망, 생활, 애도, 수선, 기억, 기다림, 공유, 계획 등 여덟 가지 키워드로 풀어낸 ‘스테이션(Station)’을 만나게 돼요. 또 ‘베어러(Bearer)’ 일곱 명을 선정해 각 스테이션을 돌며 의례적 수행자 역할을 맡게 하고요. 그저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숨 쉬고 사용하는 기념비가 되기 위해 펠로우십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한강 작가를 비롯해 사진작가 황예지, 뮤지션 이랑, 청년 농부이자 활동가 김후주가 ‘펠로우(Fellow)’로 참여해 스테이션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와 시선을 더할 거예요.

요새와 둥지라는 상반된 개념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요? 요새와 둥지는 분명 속성이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구조 안에서 연결된다고 생각했어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과 비슷한 맥락이죠. 국가라는 체제가 요새처럼 기능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둥지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습니다.

감독님은 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공유지(commons)를 중심으로 한 작업을 이어왔는데, 이번 전시는 개별 작가의 작업을 보여주는 데서 나아가 공간과 관계 속에서 나누고 공유하는 감각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일까요? 지난 반세기 동안 개인화·사유화가 진행되어왔고, 그것이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여러 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더 즐겁잖아요. 그런 점에서 공동 감각이라는 건 굉장히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에 가까운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는 이미 함께하고 있는데,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부분을 다시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특정 형태의 집단을 상정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관심을 두었고요. 그런 관계의 비정형성이나 복잡함 자체가 제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일본관과 협력하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나요? 최고은 작가의 ‘메르디앙’ 소작업이 일본관에 설치되는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또 일본관 작가 아라카와 에이의 작업 ‘Grass Babies and Moon Babies’에서는 200개의 아기 인형이 등장하는데, 그중 일부를 관람객이 직접 안고 이동할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노혜리 작가의 스테이션을 도는 베어러가 그 인형을 안고 한국관을 오가는 장면이 연출될 예정입니다. 두 작업 모두 양육과 돌봄을 통해 미래를 사유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고, 이런 방식으로 서로의 작업이 교차하고 이어지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두 국가관의 경계에 서 있는 수목에 개입하는 일도 조율 중에 있는데,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는 오프닝 때가 되어봐야 알 것 같아요.

한국관 전시 이후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확장해나갈 계획인가요? 비엔날레를 마치면 아르코 미술관에서 귀국전과 선집 출간 등이 예정돼 있습니다. 전시 기간 중에는 구상 단계에서부터 생각하던 스핀오프 프로젝트도 구체화해보려 해요. 해방공간 기념비를 광화문으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주한 미국대사관 용산 이전 계획이 10년 전부터 논의되어왔지만, 여러 상황으로 미뤄지고 있는데요. 저는 광화문 한복판에 미국대사관이 자리한 현재 상황 자체가 완결되지 않은 해방공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공간이 시민 자치의 장이자 문화 속에서 예술이 작동하는 장소로 다시 구성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한국관 전시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첨예한 긴장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와 공동체를 향해 함께 꿈꾸고 참여하는 해방공간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진행형으로서 해방공간을 계속 창출하거나 유지할 뜻과 힘을 기르고요. 저는 스스로를 이상주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만,(웃음) 안팎의 위협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주체가 마음을 모아 무언가를 만들어갈 때 그것을 해방공간이라 칭한다면 그것만큼 살아 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없을 것 같아요.